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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독재도 모자라… 부인에게 권력 물려주려다 쫓겨나

입력 | 2017-11-16 03:00:00

짐바브웨 무가베 대통령 독재 종말
차기 대권주자인 부통령 몰아내자 군부 반발… 이틀전 쿠데타 경고
새벽 대통령 사저서 수십발 총성
軍 “국정농단 범죄자들 겨냥한것… 무가베와 가족들 안전은 보장”
무가베, 사무실 속기사였던 現부인과 10년간 불륜 벌이다 1996년 결혼





현존 세계 최장기 독재 지도자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이 군부 쿠데타로 37년간 지켜온 권좌에서 쫓겨났다. 무가베 대통령이 최근 국방장관 출신 에머슨 음낭가과 부통령(75)을 숙청하고 자신의 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52)에게 권력을 승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부통령을 지지해온 군부가 개입했다.

AP, AF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짐바브웨 군부는 15일 국영방송사인 ZBC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고 밝혔다. 시부시소 모요 짐바브웨 방위군 소장은 성명에서 “무가베 대통령 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통을 초래한 ‘범죄자’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상황은 정상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부는 “무가베 대통령과 그 가족은 무사하며,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AFP는 이날 오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무가베 대통령 사저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보도했다. 무가베 대통령의 맨션과 가까운 곳에 사는 한 주민은 “오전 2시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에 그(무가베 대통령)의 집 쪽에서 3∼4분 사이 30∼40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전했다. 전날에는 하라레 인근에서 탱크 여러 대가 목격됐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국회의사당과 무가베 대통령의 집권 여당인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당사 앞에서도 군용 차량이 포착됐다.

이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 등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짐바브웨의 군부 쿠데타는 이틀 전 이미 예고됐다. 짐바브웨 방위군 수장인 콘스탄티노 치웽가 장군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해방전쟁 참전용사 출신 정당 인사들을 겨냥한 숙청을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며 “군대가 혁명을 보호하는 문제에 개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음낭가과 부통령을 경질한 무가베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무가베 대통령은 6일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던 음낭가과 부통령을 전격 해임했다. 그레이스 여사를 후계자로 앉히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레이스 여사는 앞서 5일 공개 연설을 통해 “무가베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려준다면 기꺼이 받겠다”며 후계자 지명을 요청했다.

이번에 경질된 음낭가과 부통령은 무가베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였다. 그는 1977년 해방전쟁 당시 무가베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며 백인 정권에 맞서 독립운동을 함께했다. 국방장관 출신이기도 한 그는 군 장성과 참전용사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한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향후 짐바브웨로 돌아와 무가베 대통령에게 맞서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이그나티우스 촘보 재무장관을 구금했다. 촘보 장관은 집권여당 내 그레이스 여사의 파벌인 ‘G40’의 핵심 인물로 알려졌다. 군부가 그레이스 여사의 측근 숙청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고령 지도자인 무가베 대통령은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독립 영웅으로 초대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개헌을 통해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6년 임기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뒤 온갖 폭정과 경제 파탄 등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무가베 대통령은 사무실 속기사였던 그레이스 여사와 10여 년간 불륜을 이어간 끝에 1996년 결혼했고, 이후 그레이스 여사는 ZANU-PF의 여성연맹을 이끌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레이스 여사는 잦은 스캔들과 사치스러운 쇼핑 습관으로 ‘디스그레이스(망신)’ ‘구치 그레이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