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기자의 을(乙)로 사는법]감정노동자 ‘건강보호 핸드북’ Q&A
최근 고객의 폭언과 폭행으로 피해를 당하는 감정노동자들이 증가하자 고용노동부가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핸드북’을 발간했다.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전화를 걸어온 고객들을 상담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유성열 기자
NC백화점 순천점 고객서비스센터에 걸려 있는 문구다. 감정노동자를 고객의 ‘갑질’에서 보호하기 위해 회사가 마련했다. 이 백화점은 감정노동자의 건강 보호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고 종합계획까지 마련해 시행 중이다. 각종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한 달에 한 번 ‘조기 퇴근의 날’을 시행한다. 각 층별, 부서별 휴게실은 물론이고 건강관리실과 심리상담실을 설치했고, 휴식시간은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온·오프라인 신고센터를 함께 운영 중이다.
모든 직장이 이 백화점처럼 감정노동자를 보호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업주가 관심 없는 곳이 많고 또 막상 신경을 쓰려 해도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사업주가 많다. 감정노동자들은 스트레스에 무방비로 노출될 때가 많다. 고용노동부가 이런 사업주와 감정노동자들을 위해 ‘건강 보호 핸드북’을 최근 발간했다. 주요 내용을 Q&A로 알아봤다.
A. 말투나 표정, 몸짓 등의 ‘감정 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해야 하는 일이 포함된 노동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하고 상당한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항공기 승무원, 콜센터 상담사, 호텔 및 음식점 종사자, 백화점 및 마트 판매직 등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공공서비스 민원처리원 등 다양한 직군으로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업이 국내 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감정노동자는 약 560만∼7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노동자(1829만6000명)의 31∼41% 정도다.
Q. 전화 상담원이다. 고객이 욕을 하거나 성희롱을 하면 전화를 바로 끊고 싶은데, 그럴 때도 친절히 응대를 하고 먼저 끊으면 안 된다고 위에서 지시한다.
A. 바로 전화를 끊어도 된다. 고용부는 핸드북에서 고객이 지나친 요구나 무리한 욕설을 할 경우에는 전화를 바로 끊을 수 있는 ‘업무 중단권’을 감정노동자에게 주도록 권고했다. 대면 업무일 경우에도 감정노동자가 고객의 폭언과 폭행에 스스로 대처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재량권을 줘야 한다.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고객에게는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나 욕설을 하면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다고 사전에 안내하는 일이 중요하다. 관할 지역 경찰서와 함께 안내문을 비치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Q. 하루 종일 웃으며 고객을 상대하지만 점심시간 외에는 쉴 시간이 없다.
Q.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않으면 어떤 질병에 걸릴 수 있나?
A. 웃지만 웃는 게 아닌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우울증이나 적응장애에 걸릴 수 있고 자아 존중감이 떨어진다. 극단적으로는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감정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면 화병이나 정신적 탈진을 겪을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높아지며 피로감이 심해진다.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불안정한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요통 등 근골격계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스트레스에 따른 흡연이나 음주량이 늘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도 위험 요인이다.
Q. 감정노동에 따른 피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나?
A. 가능하다. 고객의 반복적인 제품 구매와 취소는 물론이고 폭언과 폭행까지 당한 판매원이 적응장애에 걸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아파트 주민의 지속적인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경비원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고, 전화 상담을 하다 우울증에 걸린 상담원에 대해 회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 판례가 있다.
A. 일단 피해자를 고객으로부터 떨어뜨려 놓고 업무를 중단시킨다. 고객에게 무조건적으로 사과하지 말고 사실관계부터 면밀히 파악한다. 고객의 책임이 명백할 경우에는 신속하게 전담 대응팀으로 사건을 이관하고 증거자료를 확보한다. 피해자가 민형사상 조치를 원하면 이를 지원하고 심리상담이나 치료 기회를 제공한다. 적정한 휴식과 휴가, 근무 장소 변경 등 피해자가 원하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고용부 홈페이지(www.moel.go.kr)에서 핸드북을 내려받으면 더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확인할 수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