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쉬르우아즈의 밀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김선미 기자
영화는 세계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남긴 명작 130점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107명의 화가가 2년 동안 6만여 점의 유화를 그려 이 ‘그림 같은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고흐는 새로운 장소들을 다니길 좋아했다. 런던과 파리와 같은 도시는 물론 프랑스 남부 생레미드프로방스와 같은 시골 생활도 즐겼다. 그의 운명의 최종 장소는 오베르. 1890년 5∼7월, 세상을 뜨기 전 두 달 동안 고흐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오베르는 조용하면서도 깨끗한 마을이었다. 일본 도쿄 외곽의 유럽풍 부촌인 덴엔초후(田園調布)와 느낌이 흡사했다. 특히 골목 어귀마다의 화단이 인상적이었다. 고흐는 이 마을에 살던 유명 화가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의 정원을 그렸는데, 그 정원이 환생한 듯했다.
걷다가 그 연유를 알았다. ‘우리 함께 마을에 꽃을 심어요(Je jardine ma ville)’라는 제목의 공고문이 돌담에 붙어 있었다. 그 무렵 심으면 좋은 꽃 사진들과 원예 팁도 여럿 실려 있었다. 2001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동네를 아름답게 가꾸는 동시에 주민들 간 친목을 도모하는 자원봉사 성격의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이었다.
고흐의 묘소를 거쳐 그의 명작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의 그 밀밭에 다다랐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릴 때 깊은 슬픔과 고독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베르의 그 밀밭에서 생명의 힘, 정원의 힘, 공동체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에서 오베르를 내려다보며 꽃향기를 맡는 고흐는 이제 더 이상 힘들고 외롭지 않을 거라고….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