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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월남 공사’ 이대용 예비역 육군 준장 별세

입력 | 2017-11-16 15:16:00


동아일보DB

월남 패망 당시 우리 교민들을 구출하겠다며 사이공(현 호찌민)에 남아 있다가 베트남 공산정부에 체포돼 5년간 옥살이를 했던 ‘마지막 주월남 공사’ 이대용 예비역 육군 준장이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육군사관학교 7기생인 이 전 공사는 6·25전쟁 당시였던 19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을 통틀어 가장 먼저 압록강까지 진격해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은 부대인 6사단 7연대 제1중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1963년부터 주월남대사관 무관으로 활동했으며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고 월남이 패망할 때까지 주월남대사관 경제공사로 근무했다. 1965년에는 한국군 파병 부대의 주둔지를 물색하다가 무장한 베트콩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일본 노래를 부르는 등 일본인인 척 하는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했다.

1975년 월남 패망 때는 미국이 사이공에 남은 한국 외교관들에게 철수를 권고했고,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 전 공사는 미처 철수하지 못한 교민들을 모두 철수시키는 것이 먼저라며 현장에 남았다. 교민 철수본부장으로 한국 교민이 모두 탈출하는 것을 확인한 뒤 떠나려던 그는 결국 베트남 공산정부에 붙잡혔다.

찌호아 형무소에 사형수로 수감된 그는 살해 및 북송 위협에 시달렸다. 죽과 나물로 연명하다 78kg이던 체중이 42kg까지 줄었다. 북한 노동당은 이 공사의 수감 기간 동안 베트남까지 요원들을 파견해 이 공사를 북송시키려는 공작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 죽었지 항복할 수 없다”며 북한의 회유를 거부했다.

수감 기간에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하, 조속히 저희를 구해주십시오”라는 내용이 적힌 쪽지를 장바구니에 몰래 넣어 보내기도 했다. 이 전 공사는 억류된 지 5년만인 1980년 4월에야 석방돼 한국 땅을 밟았다.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그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 육군사관학교총동창회 회장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17일 오전 7시 반,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02-2258-5940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