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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아파트 또 흔들… “도저히 건물안에 있을수가 없다”

입력 | 2017-11-17 03:00:00

포항 이틀째 ‘지진 공포’




하루가 지났지만 공포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깨지고, 갈라지고, 무너져 내린 처참한 모습이 속속 드러나면서 공포는 증폭되고 있다.

16일 오전 9시 2분 42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전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포항의 한 호텔 9층 방에 있던 김모 씨의 눈앞에서 천장 조명이 ‘부르르’ 떨었다. 김 씨는 “외출 준비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벽에 걸린 액자와 천장의 조명이 떨리는 걸 보고 이러다 정말 건물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진의 크기는 규모 3.6. 예정대로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다. 밤사이 포항 시민을 불안에 떨게 한 여진은 이렇게 16일 내내 이어졌다. 오전 11시경 북구 두호동 영일대해수욕장의 음식점을 찾았다 여진에 놀라 뛰쳐나온 한 남성은 “천장이 흔들리고 바닥이 떨려서 도저히 건물 안에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여진이 계속되면 앞으로 생활하기가 힘들 것 같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이날 오후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이재민 70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 첫날보다 200명가량 늘었다. 집에 있던 사람들마저 여진 탓에 오히려 체육관으로 온 것이다. 체육관은 한눈에 보기에도 빽빽했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쪽잠을 잔 주민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바닥에 마이크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거나 일부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밤사이 잠을 자다 갑자기 깨어나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 탓에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주민들까지 나타났다. 한 여성은 “내내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다. 제발 여진이라도 좀 잦아들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모포와 세면도구가 지급됐지만 이재민이 늘면서 불편도 커지고 있다. 체육관에는 세면장이 한 곳밖에 없어서 바로 옆 읍사무소 세면장까지 줄을 서는 상황이다. 박모 씨(51·여)는 “급하게 대피소를 마련하다 보니까 그런지 제대로 씻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 큰 문제다. 화장실 물은 손 씻기도 어려울 정도로 졸졸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재민 상당수가 살던 근처 대성아파트는 1988년 지어진 낡은 건물이라 피해가 컸다. E동은 ‘피사의 탑’처럼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아파트 뒤쪽은 외벽이 여기저기 무너져 철골을 드러냈다. 층마다 벽이 쩍쩍 갈라져 곧 붕괴할 것 같은 모습이다. 5층에 사는 박용순 씨(65·여)는 “1988년부터 살았다. 이런 피해는 상상도 못 했다. 3층 이후부터 심하게 기울어져 올라가기 힘들어 곧장 내려와 대피했다”고 말했다.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망천리 마을의 낡고 오래된 주택은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 담장과 벽체 상당수가 부서져 집 안이 훤히 드러난 곳도 많았다. 돌담은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만큼 내려앉았다. 건물이 기울어진 탓에 창문이 닫히지 않는 집도 많았다. 대부분 노인들이라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타 지역에 사는 가족들이 복구를 위해 찾아왔다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자 발길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임선 씨(84·여)는 “어제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와 보니 벽은 다 갈라져 있고 가재도구는 모두 부서져 있었다. 다리가 불편해 걷기도 힘든데 언제 이걸 복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지진으로 주택 등 민간건물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반파 미만은 소유주가 보험 등을 통해 직접 복구해야 한다. 다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뒤 피해 규모가 전체 50% 이상이면 특별재난지원금으로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주민 최모 씨(45·여)는 “4월에 전세금 1억 원을 올려서 3억 원을 주고 들어온 집이 무너질 처지에 놓였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시청과 국토해양부까지 물어봤는데 다들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며 나 몰라라 한다”고 말했다.

포항=장영훈 jang@donga.com·구특교 / 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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