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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앤젤리나 졸리처럼 예방적 수술 왜 안될까

입력 | 2017-11-17 03:00:00


게놈 해독 진단키트. 23앤드미 제공

게놈 해독 결과는 유전자 검사와 직결된다. 30억 쌍에 달하는 염기 배열 중에는 유전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가 2만∼2만5000개 포함돼 있다. 개인의 게놈 서열을 알면 표준 모델과 비교해 유전자의 변이 여부 확인이 편리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알 수 있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 역시 유방암 발병 확률을 높이는 BRCA1 유전자 변이를 확인한 뒤 가슴절제술을 받았다.

그런데 졸리가 한국인이었다면 검사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현행법에 따르면 BRCA 유전자에 의한 유방암 관련 유전자 검사는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게놈 분석과 관련된 정보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 따른다. 제50조와 시행령 20조에 따르면 유방암을 비롯해 골다공증, 당뇨병, 비만, 폐암, 강직성척추염, 치매 등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가 금지돼 있다. 유방암과 강직성척추염, 치매와 관련해서는 이미 질병이 발병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검사가 가능하다.

해당 항목 질병 중 일부는 질병이 발병하기 전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미리 유전자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조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만 관련 유전자인 ADRB3 유전자 변이를 미리 알았더라면 식습관을 개선해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는 “유전자 변이가 있다고 반드시 질병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리 유전 정보를 알면 일찍부터 질병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의료기관을 통해야 하는 것도 개인이 자신의 게놈 서열을 아는 데 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단순히 조상을 알고 싶어서 게놈 해독을 하고 싶어도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에서 혈당, 혈압, 색소침착, 탈모 등 질병이 아닌 유전자 46개에 대해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아도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전체 유전자 개수와 게놈이 담고 있는 정보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유전자 검사 관련 연구자들은 반드시 금지해야 하는 항목만을 정하고 나머지는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유전자가 많고, 사례가 많을수록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본격적인 기술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국내 유전자 검사 시장이 현행 제도에 묶여 있는 동안 해외 기업은 대중에게 유전자 검사를 적극 알리며 자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구글이 투자한 미국 유전정보분석 기업 23앤드미(23andme)는 4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질병 관련 유전적 변이 50만 개를 검사할 수 있는 키트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소비자는 149달러(약 16만5000원)에 키트를 구입한 뒤 침을 뱉어 23앤드미에 우편으로 보내기만 하면 온라인으로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이사는 “해외 기업들은 다양한 유전자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축적한 뒤 게놈 해독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충분히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만 제도에 막혀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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