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죽비’. 2005년
죽비를 방 안에 걸어 놓은 스님들을 간혹 본다. 수행의 자세가 흐트러짐을 경계하기 위해 일부러 눈에 띄는 데 놓은 것이다. 방 안의 죽비는 방 주인을 긴장하게도 하지만 그것을 보는 타인들에게도 마음을 다잡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죽비는 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좌중의 마음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또 몇 번의 내리침만으로도 효과를 보는 이유는 마음이 마음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죽비는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는 물건이 아니다. 죽비는 아주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기에 그 권위가 있다. 절집에서 죽비는 있어야 하는 자리에만 있다. 죽비를 들고 활보하는 스님은 보기 힘든데, 절은 수행하고 기도하는 곳이지 허물을 찾아 징벌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님이 예식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죽비를 치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기자는 세 번만 치는 이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법당 밖에서 망원렌즈를 끼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셔터 소리가 죽비 소리에 묻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찍어야 되기 때문이었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