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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소리만 나도 심장 오그라들어” 불안감에 식사도 못해

입력 | 2017-11-18 03:00:00

[포항 규모 5.4 지진 파장]주민들 ‘집단 트라우마’ 우려




‘쿵!’

16일 오후 5시경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누군가 전원이 켜진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스피커를 통해 묵직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체육관 내부는 정적에 휩싸였다. 수백 명의 주민이 놀라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떨었다.

1시간 후 누군가의 발에 마이크 줄이 걸렸다. ‘지지직…’ 하는 소리가 나자 여기저기서 ‘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또 지진 났냐”며 웅성거렸다. 기분 나쁜 마이크 소리가 자주 들리자 “와 이라노!” “뭐하는 거냐!” “당장 꺼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벌떡 일어서 화를 내며 무대 쪽으로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겁에 질린 얼굴의 한 여성은 가족의 손을 잡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일부는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갔고 갓난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김홍제 씨(58)는 “가뜩이나 모두 예민한데 저런 마이크 같은 건 관리 좀 잘하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포항 시민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난생처음 겪은 충격에 여진까지 이어지며 몸과 마음 모두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집단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우려된다.

대피소에는 가슴 및 머리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신모 씨(64·여)는 여진이 닥쳐 ‘쿵’ 소리가 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긴장 탓에 신 씨의 얼굴은 늘 찡그린 상태다. 신 씨는 “둘째 날 여진을 겪으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온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체육관 한쪽의 의료봉사단을 찾은 한 여성은 불안 증세에 혈압이 200 가까이 치솟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혈압은 내렸지만 불안감 탓에 식사를 계속 거르고 있다. 김연수 간호사는 “하루 수백 명이 찾는데 대부분 불안 증세를 호소하고 40%가량은 두통약 처방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두통의 이유는 지진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감 때문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대부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열악한 대피소 사정도 주민들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흥해실내체육관에 머무는 이재민은 17일 1000명가량으로 늘었다. 15일 500명, 16일 700명 등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피소는 더 이상 이재민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실내 공기도 답답하고, 씻거나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을 가는 기본적인 생활이 매우 불편한 상태다. 이날 설치된 트라우마센터에서는 노인과 어린이 수십 명이 상담을 받았다.

불안과 공포를 견디지 못해 급기야 포항을 떠나는 시민도 나오고 있다. 북구 두호동 아파트 19층에 사는 원순옥 씨(68·여)는 지진 첫날 울산의 아들집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청심환을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원 씨는 “다음 주까지 강한 여진이 이어진다는 소식에 당분간 포항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고층에서 느낀 지진이 너무 무서워 이참에 고향을 아예 떠날까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북구 용흥동의 손모 씨(22·여)도 15일 오후 늦게 부모님을 모시고 대구의 언니 집으로 대피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만 여진이 잠잠해질 때까지 포항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 두통과 소화불량 증세를 호소하는 손 씨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너무 무섭다.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항을 완전히 벗어나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포항=장영훈 jang@donga.com·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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