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참전·민간인 학살에 “마음의 빚을 졌다” 사과한 文 ‘美제국주의 전쟁에 돈 벌러 파병’ “6·25는 내전이자 국제전” 70년대 리영희같은 反美논리 파리협정, 베트남 공산화 불러왔듯 북-미 협정에 집착하는 이유 뭔가
김순덕 논설주간
“그렇지만 이제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고 언급한 대로 문 대통령은 곧바로 현재와 미래를 강조하긴 했다. 그러나 과거 베트남전 파병 과정에서 발생했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사과를 의미한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13년 전 베트남을 찾았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고 사과한 바 있다. 이번엔 국민도 아니고, 한국 전체에 마음의 빚을 지운 문 대통령은 좀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 우선은 베트남이 한국의 사과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 관료들과 자주 접한다는 한 사업가는 “베트남은 세계 최강국 미국과 싸워 승리했다는 자존심이 강한 나라”라며 “가난해서 용병이나 보낸 한국에서 자꾸 사과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했을 때 베트남은 발끈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삼가 달라’는 입장문을 실었을 정도다. 베트남뿐 아니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에 등장하듯 당시 베트남의 구원자로, 한국에 대한 애국자로 자부했던 참전 한국군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국가에 대한 사과를 그 흔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해낸 대통령에게 마음 편히 박수칠 수 없는 이유는 베트남전을 보는 대통령의 시각 때문이다. 대선 후보 토론회 당시 “베트남전이 공산주의가 승리한 전쟁인데 대학 시절 (그 내용을 적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희열을 느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고, 그대로 실현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답했다. 1970년대 초반 큰 충격을 받았다는 그 책에서 대통령은 베트남전의 부도덕성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베트남 내전(內戰)에 미 제국주의 용병으로 참전해 민족통일을 더디게 만든 것을 이번에 사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과민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유엔에서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6·25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다”고 연설했다. 월남 지역에서도 부패 정부보다 공산당 지지가 많았던 베트남전은 분명 내전이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은 6·25전쟁도 남북 간 공산주의 이념에 기초한 계급 투쟁적 내전으로 본다.
6·25 발발 전 남한에서 좌익은 조직력은 막강했으나 소아병적 좌경주의와 급진성 때문에 민중적 기반이 탄탄치 못했다는 연구에 따르면, 6·25는 베트남전과 동렬의 내전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끼어드는 바람에 국제전으로 확대된 것도 아니다. 나치즘, 제국주의와 싸웠던 미국은 한반도에서도 목숨을 걸고 우리와 함께 공산주의에 맞서 혈전을 치렀고, 지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위협이 되는 기적 같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북에서 일으킨 침략전쟁에 만일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찌 됐을지, 오늘의 북한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판이다.
1974년 ‘전환… ’을 쓴 리영희는 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또 정신주의에 과도하게 빠진 탓에 중국 문화혁명을 높이 평가한 대목은 오류였다고 뒷날 고백했다. 1991년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실패를 예견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 86그룹의 의식은 죽은 리영희만큼도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한미방위조약은 한반도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 정책의 문서화’ 같은 리영희류의 반미(反美) 논리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왜 한미동맹을 뒤흔들 것이 분명하고, 베트남 적화통일을 불러온 1973년 파리협정과 다를 바 없는 북-미 평화협정에 목을 매다는지 알 수가 없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