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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과학교양서

입력 | 2017-11-20 03:00:00


표정훈 출판평론가

안동혁의 ‘과학신화(新話)’, 김봉집의 ‘자연과학론’, 양동수가 번역한 190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오스트발트의 ‘화학의 학교’(이상 1947년), 권영대의 ‘자연과학개론’, 김기림이 번역한 스코틀랜드의 과학저술가 존 A 톰슨의 ‘과학개론’(이상 1948년). 우리나라 과학교양서의 출발을 이룬 책들이다. 문학평론가·시인 김기림은 왜 과학교양서를 번역했을까?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말한다.

“김기림은 오늘 우리가 느끼는 가난 가운데 ‘과학의 가난’이 제일 불행했다고 단언하고, 새 나라 건설의 구상은 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계몽을 한 필수 사항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외쳤지요. 과학사상, 과학적 정신, 과학적 태도, 과학적 사고방법의 계몽이야말로 새 나라의 노래이어야 했던 것이지요.”

일제강점기에도 과학 계몽을 위한 노력은 꾸준했다. 1924년 10월 창립된 최초의 과학진흥단체인 발명학회는 1933년 6월 최초의 과학종합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1929년 6월 연희전문학교 연희수리연구회가 창간한 학술지 ‘과학’은, ‘일반사회가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에 대한 친(親)함이 자라도록 한다’는 목표를 창간사에서 밝혔다.

본격적인 첫 대중 과학교양서는 전파과학사의 현대과학신서다. 과학사학자 송상용이 주도하고 박택규(화학), 이병훈(생물학), 박승재(물리학) 등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하여 1973년 1월 첫 권 ‘우주 물질 생명’(권영대 외)이 나왔다. 1985년까지 나온 130여 권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우리나라 저자들의 책이다. 과학교양서 저술·번역가들이 사실상 현대과학신서를 통해 탄생했다.

첫 과학교양서 베스트셀러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1981년 문화서적과 일월서각에서 번역서가 나와 그해 대형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2위에 올랐다. 2004년에 저작권 계약에 따라 사이언스북스에서 홍승수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번역으로 나와 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우리나라 저자로는 물리학자 김제완의 ‘겨우 존재하는 것들’(1993년)이 큰 주목을 받으며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올리버 색스, 헨리 페트로스키, 야마모토 요시타카 등 탁월한 과학기술 분야 저술가들이 많다. 그 반열에 오를 만한 우리나라 저술가들이 나오려면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문화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 과학기술도 하나의 문화이며 실험실 바깥 사회 배경과 불가분이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