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껍질은 소화를 돕고, 과육 위쪽 흰 층은 음주 후에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제주 백성들에 대한 조정의 귤 공납 강요가 얼마나 심했는지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그 폐단에 대해 고발했다. ‘귤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胡椒)를 집어넣어 나무가 저절로 말라죽으면 (공납) 대장에서 빠지게 된다. 그루터기에서 움이 돋으면 잘라버리고 씨가 떨어져 싹이 나면 보이는 대로 뽑아버리니, 이것이 귤과 유자가 (제주에서) 없어지는 까닭이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귤 사랑이 대단했던 영조가 신하들에게 귤 공납 폐단에 대해 묻는 장면도 나온다. “감귤(柑橘)의 진공(進貢) 또한 폐단이 있어 여염집에서 이 나무가 나면 반드시 끓는 물을 부어 죽인다고 하니, 사실이 그런가?”
조선의 왕들은 제주 바다를 건너는 과정에서 귤이 썩고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잦자 육지에서 귤을 재배하는 실험도 시켰다. 태종은 상림원 별감 김용을 보내 제주에 있는 귤나무를 전라도 바닷가에 옮겨 자생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세종은 강화도에 옮겨 심은 10척 길이의 귤나무를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닐하우스처럼 높은 지붕을 치고 허무는 일을 매년 반복하기도 했다.
역사 속 귤은 그 희소성만큼이나 의학적 효험도 크다. 심지어 옛날에는 의사를 ‘귤정(橘井)’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진나라 소탐이라는 사람이 귤나무 옆 우물물로 병자를 치료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귤은 한방에서 기(氣)의 소통을 돕는 약재로 알려져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의서(醫書) ‘의학입문’에는 ‘기(氣)가 막힐 경우 증상이 가벼우면 그냥 움직이면 곧 낫지만 심할 때는 귤껍질만으로 끓인 귤피 일물탕을 써야 한다’고 적고 있다. ‘기가 막힌다’는 말은 우리 몸속의 기가 움직이는 미세한 통로가 막힌다는 뜻으로, 한방에선 귤의 고유한 향기가 막힌 기의 통로를 뚫어준다고 본다. 오나라 추하(趨嘏)의 시에, ‘귤주에 바람이 이니 꿈조차 향기롭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다.
영조는 ‘기가 막힌’ 일을 자주 당해서인지 평소 귤껍질에 다른 약재를 첨가한 차를 달여 먹으며 건강을 선제적으로 지켰다. 귤껍질에 향부자를 넣은 향귤차, 소엽을 넣은 소귤차, 인삼을 넣은 삼귤차, 계피를 넣은 계귤차, 살구씨를 넣어 기침을 없애는 행귤차, 생강을 넣은 귤강차, 꿀을 넣어 달콤한 귤병차가 그것. 특히 귤과 생강을 같이 달여 차로 만든 귤강차를 상복했는데, 임종의 순간에도 귤에 계피와 생강을 함께 넣은 계강차와 샘물을 백번 끓여 만든 백비탕을 기사회생의 명약으로 사용한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다.
귤껍질은 날것으로는 소화제로 쓰이고, 묵은 것은 기침이나 목이 쉰 증상을 없애 주는 감기 치료제로 쓰인다. 청귤의 껍질인 청피는 현대인에게 더욱 좋다. 스트레스로 막힌 기를 뚫어주고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해주기 때문이다. 귤 속살에 붙은 실 같은 층은 음주로 속이 쓰린 애주가에게 일품이다. 갈증을 멎게 하고 술 마신 뒤에 토하는 증상을 치료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