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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이철희]“개화기때 위정척사 사상이 한국 좌파 이념적 기반 형성”

입력 | 2017-11-20 03:00:00

아산정책연구원장 함재봉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은 ‘한국 사람’의 사상적 정체성의 원형을 조선 망국기 역사에서부터 찾는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김상헌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최명길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역사를 모르면서 좌든 우든 어떤 이념이란 칼로 양단을 낼 수는 없다. 우리 역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철희 논설위원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 중국이나 일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언어인가. 그렇다면 한국말 못하는 재외동포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종교도 아니다. 한국 사회는 종교의 백화점이다. 혈통이라면 귀화한 외국인, 다문화가정 출신은 어떻게 되나. 과연 한국 사람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59)이 최근 출간한 ‘한국 사람 만들기 Ⅰ’(아산서원·사진)은 이런 의문을 정치사상사적 측면에서 탐구한 책이다. 그 정체성의 연원을 찾기 위해 그는 100여 년 전 우리 지식인들의 삶과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 5권으로 나올 시리즈의 제1권에 이어 제2권이 곧 나오고, 현재 제3권을 집필 중이다.》
 

함 원장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개신교 목사였던 함태영 전 부통령, 아버지는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때 순직한 함병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함 원장도 아버지의 유학 시절 미국에서 태어났고 고교 이후 미국에서 공부했다. 연세대 교수, 유네스코본부 사회국장,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치는 동안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살았다. 그는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5개 담론(친중 위정척사파,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 친소 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을 우리 근대사에서 추적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그는 친미 기독교파의 뿌리가 깊은 사람이다.

―‘한국 사람’ 함재봉은 누구인가.

“태생적으로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특히 아버지는 외교관으로서 한국 상황을 대변하고 합리화 정당화하는 자리에 있었다. 한국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를 설명하며 외국 사람을 설득하는 것을 지켜봤다. 나 스스로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한국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해 왔다. 어쩌면 한국 문화로부터 소외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원래 소외됐을 때 시작되는 것이다.”

―연구는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고민은 이미 미국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 시작됐다. 서양의 고대 중세 근대 탈근대, 그리고 동양 정치철학·사상을 공부하면서 역사적, 시대적 맥락을 모르고서는 그 사상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도 좌익이든 우익이든 사상가들의 주장은 잘 아는데 그게 나온 역사적 맥락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최소한 우리를 둘러싼 4강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이 좀 커졌다.”

―한국인 의식구조의 뿌리를 다섯 가지 담론으로 나눴는데, 좀 도식적인 느낌이다.

“100여 년 전 조선이 망하고 그 정체성마저 무너지면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시대적 고민이 시작됐다. 새로운 사람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기존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고 나선 것이 이항로 최익현의 위정척사파다. 그들은 그 기원을 병자호란 이후 형성된 친명반청(親明反淸) 소중화(小中華) 의식에서 찾았다. 그리고 일본에 가 본 김옥균 유길준 등이 이렇게 세상이 변했는데 안 따라갈 수 있느냐며 제기한 것이 친일 개화파이고, 이들이 결국 실패하면서 미국 기독교에서 대안을 찾은 이들이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 등 친미 기독교파다. 그 다음이 볼셰비키혁명 이후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를 조선 독립의 최고 이념으로 받아들인 이동휘 같은 친소 공산주의파다. 1920년대 가장 뒤늦게 들어온 게 민족주의다. 나라를 뺏기고 이념도 종교도 다르지만 어디에서 살든 결국 엮어주는 것은 피, 혈통이라는 매력적인 민족 신화를 만들어낸 신채호 같은 인종적 민주주의파다.”


 
“롯데 앞 시위는 親中 사대주의”

―결국 새로운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모두 외부에서 찾고 있다.

“정체성이란 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1권도 ‘조선 사람 만들기’로 시작한다. 한국 사람 이전의 조선 사람은 누구였나. 고려 사람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조선 사람 만들기를 보면 얼마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고려의 불교문화를 주자성리학의 종법제도라는 완전 이질적이고 외래적인 것으로 바꿨다. 고려는 모계사회였다. 율곡 이이도 외가 오죽헌에서 자랐는데, 오죽헌 역시 사임당의 친가가 아닌 외가였다. 이를 부계사회로 만든 게 바로 세종의 혁명이었다. 이것도 17, 18세기가 돼서야 뿌리내렸다.”

―굳이 친○라고 앞에 붙일 필요가 있었나.

“친중, 친일, 친미 등을 일부러 썼다. 약간 비꼬고 싶어서 그랬다. 물론 대놓고 친일한 사람도 있지만 당시 개화파는 일본을 그야말로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주변국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과연 100여 년 전 위정자나 지식인의 것보다 더 나은지 회의적이다. 지금 같은 표피적인 수준의 이해가 아니었다. 그들의 고민과 뉘앙스를 제대로 안다면 지금 잣대로 친일, 친미, 친소라고 한마디로 매도해선 안 된다.”

―결국 한국인 의식구조 저변의 뿌리, 즉 계보만 찾다 끝내고 마는 것 아닌가.

“막스 베버가 말한 이념형(ideal type)을 찾으려는 것이다. 가령 친일 개화파가 일본에서 뭘 배웠고 어떻게 수용해서 한국을 어떻게 고치려 했는지, 먼저 그 원형을 보자는 것이다.”

―친일 개화파에 대해 ‘한국 사람의 가장 큰 심리적 콤플렉스’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청산하겠다는 ‘적폐’도 그 뿌리는 친일파로 시작해 독재체제로 이어졌다고 본다. 일본과의 관계는 여전히 논란이다.

“역사는 역사고 안보는 안보다. 복잡할 것이 없는데, 그걸 섞어 버린 것이 문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 속국이었다고 했는데, 아무도 중국대사관에 가서 시위를 벌이지 않는다. 중국이 (사드 문제로) 저렇게 못되게 구는데도 반중 정서도 없고 반중 데모도 없다. 어떻게 중국대사관이 아닌 롯데 앞에서 데모를 할 수 있나. 그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닌가.”

―그런 분위기의 저변에는 친중 위정척사파의 영향이 깔린 것인가.

“그렇다. 위정척사 사상은 반미,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좌파의 이념적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은 가장 지독한 친중 위정척사와 인종적 민족주의가 합해진 것이다.”

―그러면 우파는 어떤가.

“우파는 친일 개화파와 친미 기독교파가 섞인 것이다. 친미 기독교파는 오늘 한국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윤치호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 본산인 미국 남부의 핵심 중 핵심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공부했다. 거기서 백인 인종주의를 겪었고 미국에 갔던 사람 대부분처럼 차라리 일본이 낫다고 했다. 그런 뼈아픈 경험에서 윤치호도 결국 친일파가 된다.”

―함 원장도 2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을 알면 알수록 한국이 편하다. 미국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미국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잘 모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런 사람은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늘 보던 사람이다. 새로운 사람이 아니다. 말투나 생각이 너무 익숙하다. 금발의 장신에 부잣집에서 태어난 잘난 이들, 전형적 미국 백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그들이 주류가 됐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표적인 친미 기독교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 개화파의 영향이 크다고 보면 되나.

“이승만은 친미 기독교파다. 그렇다고 이승만이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하지는 않았다. 이승만이 나중에 미국에서 어떻게 원조를 끌어내고 방위조약을 받아냈는지 보면 안다. 박정희는 일본이 만주국을 만드는 놀라운 실험을 눈으로 지켜봤고, 그것을 한국에 이식해 산업화 근대화를 시작했다. 전두환, 노태우는 좀 특이하다. 육사 11기로 미국 군사학교로 유학해 미국 영향을 받았고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하면서 군대로 상징되는 근대를 겪은 이들이다.”

“우파는 親日개화·親美기독교 섞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떤가.

“박정희 이후의 대통령들은 사실 미국이나 일본 등 직접적 외국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윤보선, 장택상처럼 영국에서 제국의 특권층 교육을 받은 굉장히 특이한 이들 밑에서 정치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면서도 직접적 외국 경험은 없다. 하지만 국내의 보편적 정서를 잘 대변한 이들이다.”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은 어떻게 보나.

“그 뿌리를 찾기 시작하면 모든 게 엉키게 된다. 다만 한쪽은 민주화를 추진했고, 한쪽은 근대화 산업화를 일으켰다. 좌파는 산업화에 대한 굉장한 반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파는 적어도 국민소득이 4만 달러는 돼야 한다고 하지만, 좌파는 이 정도 산업화면 됐지 더 해야 하느냐, 그보다는 서로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본다. 목표 자체가 다른 것 같다.”

―한국 사람 만들기가 시작된 지 100년이 넘었다. 이제 그 정체성이 생겨날 때가 되지 않았나.

“어렴풋이는 보인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체성이란 것은 내부적으로 자기가 규정하는 것도 있지만 외부에서 규정하는 부분이 크다. 나를 스스로 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날 보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정체성이다. 1960년대 한국은 중국, 일본의 아류였을 뿐 정체불명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전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다들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다섯 가지 담론이 서로 다투고 있는 형편 아닌가.

“물론 그 다섯 가지 담론이 중첩돼 있고 그것이 부딪칠 때는 참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들이 상호적이지 배타적이진 않다. 어떤 식으로 선택을 하든지 천천히 풀어가야 한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한국 사람이 공유하는 리추얼(ritual), 의식·예법 같은 것이 만들어져야 한다. 국적 불명인 결혼식 입학식 같은 의식도 있겠지만 정말 작은 데서, 가령 길거리 리추얼 같은 것을 찾아가야 한다. 한국인은 아는 사람에겐 예의바른데, 모르는 사람에겐 그렇게 무례할 수 없다. 친소관계에 갇혀 시민, 국민까지 못 간다. 언제까지 혈연·지연·학연에 매달려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