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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뷰]‘40년만의 엑스포’ 좌절… 부메랑 맞은 美우선주의

입력 | 2017-11-21 03:00:00



박용 특파원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6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 아르헨티나 대표단은 2023년 엑스포 개최지로 자국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호명되는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서로 얼싸안은 채 키스를 주고받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막판 경합을 벌였던 미국 대표단은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약 40년 만의 엑스포 유치에 도전했지만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예전만 못하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 날개 꺾인 트럼프의 ‘엑스포 드림’

미국은 제조업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 11번의 엑스포를 개최하며 세계 최고 기술과 문화를 선보였다. 1939년 뉴욕 엑스포에선 세계 최초로 TV를 선보였고, 미소 냉전 시기인 1964년 뉴욕 엑스포에서는 인공위성 궤도가 설치된 대형 지구본 구조물과 월트디즈니의 테마파크 등을 소개하며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1984년 뉴올리언스 엑스포를 끝으로 엑스포 개최국 명단에서 사라졌다.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 제품을 산다(hire American, buy American)’는 슬로건을 내건 트럼프 행정부는 부활하는 미국 경제와 산업을 보여줄 무대로 엑스포를 선택했다. 미 국무부는 부장관이 나서 미네소타 엑스포 개최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외신기자들까지 불러 홍보전을 펼쳤지만,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 부상하는 중국, 주도권 내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후 엑스포 개최 무산 말고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생채기를 낸 일이 또 생겼다. 6∼17일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3)에서 미국의 위상은 예전만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밝히면서 졸지에 주변국으로 전락했다. 미국 대표단은 소규모였고, 그나마 석탄 관련 행사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대기오염 방지를 위해 친환경 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인 중국은 유럽과 친환경 기술 개발 협력을 강화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약 탈퇴로 생긴 기후변화 리더십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시리아까지 포함해 200개국이 파리협약 이행을 다짐하는 상황에서 미국만 외톨이가 됐다는 비난 여론도 불거졌다.



○ 껄끄러운 ‘트럼프 건너뛰기’도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fK의 국가브랜드지수(NBI) 조사에서 지난해 1위를 차지한 미국은 올해 6위에 그쳤다. NBI 조사를 개발한 사이먼 안홀트 정치 컨설턴트는 “미국이 거버넌스 분야에서 점수가 하락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정치적 메시지에 주력하면서 발생한 트럼프 효과”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부 요직을 비워두면서 국무부의 기능 약화와 사기 저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예 일부 유럽 국가가 미 실리콘밸리 주재 대사직을 신설하는 등 백악관을 건너뛰어 미국 주 정부나 도시를 직접 상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티안 엘러 유럽의회 대미관계대표단장은 “유럽의회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더는 서방세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