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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의 길]터널을 지나 이윽고 그곳으로

입력 | 2017-11-22 03:00:00

<10> 옛 아현리역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아현터널 위쪽에서 바라본 경의중앙선 복선 철길. 일제강점기 아현리역이있던 자리다. 윤동주는 이곳에서 노동자의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 여성 노동자가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갔다. 불황이기에 평양에 있는 열두 개 고무공장 사장들이 2300여 노동자에게 임금을 못 주겠다고 통고했다. 노동자들은 굶어 죽겠노라며 ‘아사(餓死)농성’을 시작했고, 1931년 5월 29일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최초의 고공투쟁을 시작했다. 여성 노동자 문제는 1930년대에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남자보다 값싼 여성 노동자를 대거 고용한 잔인한 시대였다.

윤동주 시 ‘해바라기 얼굴’에도 여성 노동자가 등장한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공장)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
 
―‘해바라기 얼굴’(1938년 5월)

 

윤동주의 시 ‘해바라기 얼굴’ 육필 원고. 유족 대표 윤인석 교수 제공

친필 원고지를 보면 4행에 ‘공장에 간다’라고 썼다가 ‘공장’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일터’로 고친 흔적이 있다. 왜 지웠을까. ‘노동자’ ‘공장’ ‘프롤레타리아’ 같은 단어들은 파시즘 사회에서는 위험한 단어였다. 부담을 느꼈기에 윤동주 스스로 지웠을까.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출발점은 바로 타인의 얼굴이라고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말했다. 여기서 얼굴은 로션 바르는 얼굴이 아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얼굴(visage)은 형상 뒤에 숨겨진 벌거벗음을 말한다. 윤동주는 누나의 얼굴 그 민낯을 ‘숙어 들어’라며 간명하게 절제했다.

산문 ‘종시’는 ‘종점(終点)이 시점(始点)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종점역에 저녁에 들어왔다가, 아침이면 시점으로 다시 출발하는 등하굣길을 쓴 이야기다. 1941년 5월 서울 종로구 누상동 9번지로 이사 가서, 집에서 가까운 효자동 전차 종점을 시점으로 윤동주는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벌거벗은 내면, 창 밖 풍경 등을 꼼꼼히 서술한다. 전차를 타고 광화문과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터널을 통과한다.



이윽고 터널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데 거리 한가운데 지하철도도 아닌 터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이 터널이란 인류 역사의 암흑시대요, 인생행로의 고민상이다. 공연히 바퀴 소리만 요란하다. 구역날 악질의 연기가 스며든다. 하나 미구(未久)에 우리에게 광명의 천지가 있다.



1904년에 건설된 아현·의영터널은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달리는 경의선을 위해 놓은 국내 최초의 터널이다. 애오개 고개 아래를 달리는 터널이다. 중요한 단어는 ‘터널’이다. 터널 속에서 그는 ‘인류 역사의 암흑시대’와 ‘인생행로의 고민상’을 상상한다. 터널 속에서는 ‘바퀴소리만 요란’하고, ‘악질의 연기가 스며’ 든다. 그러나 터널 끝에는 ‘광명의 천지’가 있다. 바로 그곳에 노동자가 등장한다.



터널을 벗어났을 때 요즈음 복선 공사에 분주한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아침 첫차에 나갔을 때에도 일하고 저녁 늦차에 들어올 때에도 그네들은 그대로 일하는데 언제 시작하여 언제 그치는지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다. 이네들이야말로 건설의 사도들이다. 땀과 피를 아끼지 않는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현재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위치한 아현리역이 있었다. 지금은 폐역이다. 이 근처에서 동주는 ‘복선 공사’에 분주한 노동자를 본다. ‘복선 공사’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철도건설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하는 이들이 있으나, 그 과정을 보면 끔찍하다. 일본은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경부선·경의선을 부설하면서 약 2000만 평에 달하는 철로 용지, 정거장 부지 등을 무상이나 헐값에 약탈했다. 철로를 건설하려고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살인적인 노동을 시켰다.

‘종시’를 쓸 무렵, 일제는 1936∼1941년 5개년 계획으로 ‘조선중앙철도부설계획’을 세우고 중앙선 등 내륙 종단 철도를 부설했다. 조선을 병참기지로 삼으려 한 조선총독부는 1939년 이후에는 경원선과 함경선을 복선화했다. 철도 복선공사가 국책(國策)으로 정해지고 기금과 인력을 갑자기 투여하면서 노동자가 부족한 현상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네들이야말로 건설의 사도들이다. 땀과 피를 아끼지 않는다’는 구절이 생기롭다. 원고지를 보면, 노동자를 칭찬하는 문장 바로 다음이 예리한 칼로 잘린 듯 괴이쩍게 도려내져 있다. 잘린 부분엔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 노동자를 차분하게 극찬하는 문장이었을까. 이런 흔적은 윤동주의 다른 원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잘라냈을까.

‘종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 증판본에 처음 등장한다. 6·25전쟁 이후 멸공만이 국가의 유일한 이념이었을 때 노동자를 ‘건설의 사도’라고 치켜세우는 글은 위험할 수 있었다. 누군가 노동자를 예찬하는 부분을 예리한 칼로 도려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분의 절취와 함께 윤동주는 현실에 관심 없는 고독하고 수줍은 이미지로 표상되었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해바라기 얼굴’에서의 여성 노동자, 산문 ‘종시’에서의 건설 노동자를 그려낸 동주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을 때 그 사랑은 헛말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주시한 그는 여성 노동자와 건설 노동자도 찬찬히 응시하며, 우리 몸의 어딘가를 툭 건드린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