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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m뒤에 北추격조… 10여초간 총탄 40발 뚫고 사선 넘어

입력 | 2017-11-23 03:00:00

[JSA 귀순 영상 공개]




● 장면 1, 南으로 내달린 지프

北검문소 통과후 ‘72시간 다리’로 질주

남쪽으로 돌진 북한 귀순 병사가 남쪽으로 넘어오기 위해 지프차를 몰고 있다. 병사는 판문점 인근 ‘72시간다리’에 도달한 뒤에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고속으로 질주했다.


13일 오후 3시 11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상황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에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군사분계선(MDL) 북측 판문각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고속으로 남하하는 군용 지프 1대가 포착된 것. 도로 앞·뒤편으로 다른 차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군 JSA 경비대대 소속 지휘관 차량으로 볼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에 쫓기는 듯 한 모습이 석연치 않았다. JSA 경비대대는 CCTV 영상을 확대하면서 지프의 이동 상황을 면밀히 추적했다. 지프는 갈림길에서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남쪽 판문점으로 방향을 잡고 내달렸다.

오후 3시 13분경 지프는 ‘72시간 다리’ 바로 앞 북한군 검문소 앞에서 거의 멈추다시피 속도를 줄였다. 검문소 밖에 나와 있던 북한군 경비병이 신분 확인을 위해 차량에 접근하는 순간 지프는 양쪽 헤드라이트를 켜고 무서운 기세로 다리 방향으로 내달렸다. 앞 유리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지프는 시속 70km 이상으로 순식간에 다리를 건너 북측 통일각 지역까지 도착한 뒤 MDL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JSA 경비대대는 북한군의 귀순 시도로 판단하고 비상을 걸었다. 통일각 바로 옆에는 대형 바위 모양의 ‘김일성 친필비’가 세워져 있었다. 북한이 주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JSA 투어를 시작하는 지점이다.


‘72시간 다리’는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면서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길이 막히자 북한이 새로 건설한 다리다. 다리 건설에 72시간이 걸렸다는 북한의 주장에 따라 ‘72시간 다리’로 명명됐다. JSA 북쪽으로 약 800m 떨어져 있다.



● 장면 2, 당황해 추격 나선 판문각 경비병들

‘큰일’ 직감… 허둥지둥 계단 뛰어내려가

판문각서 달려나오는 北병사들 귀순 병사가 지프차를 몰고 남쪽으로 넘어가려고 하자 북한군 4명이 총을 들고 병사를 저지하려 달려가고 있다. 이 중 2명은 판문각에서 달려왔다.


오후 3시 14분경. 지프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진입하자 군사분계선(MDL) 북측 판문각을 지키던 북한군 경비 병력에 ‘초비상’이 걸렸다. 북한 경비병들은 당혹해하며 귀순을 막기 위한 추격에 나섰다.

북한 경비병 2명이 판문각 바로 앞 계단을 넘어지듯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다. 이들은 갈색 군복 차림에 권총으로 무장했다. 거의 동시에 판문각 인근 북측 초소에서 철모와 방탄복을 착용한 경비병 2명도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밖으로 달려 나왔다.

이들이 어깨에 멘 AK 계열의 자동소총이 앞뒤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JSA 내에는 권총과 소총(단발사격용 라이플)만 반입할 수 있다. 자동소총을 반입하거나 휴대하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다. 일부 경비병은 권총 착용 여부를 손으로 확인하면서 가던 길을 되돌아보는 등 허둥지둥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형 사건’이 터졌다는 충격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듯했다.

북한군 추격조는 모두 판문각 앞 북측 도로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지프가 접근하는 MDL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남측 JSA 경비대대의 감시와 대응 상황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동료의 귀순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절박감도 보였다. 한미 JSA 경비대대는 폐쇄회로(CC)TV로 북한군 추격조의 일거수일투족을 확대하거나 쫓아가면서 지켜봤다. 남북 군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최전선 지역이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상황이 연출됐다. 같은 시각 한국군 JSA 경비대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태세 강화 등 후속 조치에 돌입했다.



● 장면 3, 배수로에 빠진 지프, 사력 다해 뛴 귀순병

자유가 눈앞인데… 차문 박차고 나와 달려

南으로 넘어온 귀순병 배수로에 빠진 지프차에서 뛰어내린 귀순 병사(점선 안)가 북한군 추격조의 무차별 총격을 받으며 우리 측 자유의집 방향으로 전력질주하고 있다.


희뿌연 화면 속으로 지프 한 대가 달렸다. 카메라는 가로수가 늘어선 포장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을 클로즈업한다. 뭔가 긴박한 일이 일어난 것을 감지한 듯 화면 앵글이 이곳저곳으로 흔들렸다.

정면을 향해 내달린 지프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군 검문소와 초소에 이른 차량은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이내 돌파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검문을 했던 북한군은 차량을 제지하기 위해 뒤따라 달리다 총격 자세를 취했다.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켜 귀순 의사도 남쪽에 분명하게 표시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차량에 탄 채로 MDL을 넘어 귀순에 성공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한미 JSA 경비대대도 북한군의 지프 귀순으로 판단하고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오후 3시 15분 지프는 MDL 북쪽으로 불과 10여 m 남겨둔 지점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낙엽이 수북한 깊은 배수로에 지프 앞바퀴가 빠지면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것.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였다.

귀순 북한군은 기어를 바꿔가면서 가속페달을 여러 차례 밟아 배수로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지프는 굉음만 낼 뿐 옴짝달싹도 못 했다. 차창 밖으로는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판문각 경비대원들이 차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몇 초만 더 지체해도 추격조에 체포되거나 차 안에서 총알 세례를 받고 죽을 수도 있는 생사의 갈림길.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군은 운전석 차량 문짝을 힘껏 밀어제친 뒤 전광석화처럼 뛰어내렸다. 바닥에 쌓인 낙엽 더미를 밟는 바람에 순간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내 MDL 남측을 향해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한미 JSA 경비대대의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MDL을 가로질러 남측 자유의집 바로 옆쪽 면으로 다급히 뛰어오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자유를 향해 사선(死線)을 넘은 한 젊은이의 숭고한 질주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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