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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노무현의 로스쿨, 문재인의 절대수능

입력 | 2017-11-23 03:00:00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포항 지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관한 의견이 많이 올라온다. 수능 연기 찬반 청원과 함께 ‘수능 연기로 추가 등록한 독서실비 지원하라’ ‘포항 수험생 특별전형 도입하라’ ‘레드벨벳 컴백도 일주일 연기해 달라’는 다양한 민원이 줄을 잇는다.

수능 연기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민원이 수능 절대평가 하지 말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축소하라는 청원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수능의 변별력을 낮춘다고? 못 미더운 학종을 늘리겠다는 거냐”며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권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학종인데, 이 얘기는 안 하고 무슨 수능 절대평가냐”고 반발하는 바람에 수능 개편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수능과 학종을 둘러싼 혼란은 노무현 정부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논란과 닮은꼴이다. 2007년 도입된 로스쿨 제도는 노 정부 사법개혁의 핵심이었는데, 21세기에 걸맞은 국제적인 감각과 창의성이 뛰어난 법조인을 기르자는 취지였다. 2008년 입학사정관제로 시작해 2013년 학종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대학입시에서 정성평가를 강화해온 배경에도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기르자는 목표가 자리한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의도와는 달리 ‘금수저를 위한 제도’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난을 받는다. 로스쿨은 입학부터 졸업 후 로펌 취업까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좌우한다는 뜻에서 ‘돈스쿨’로 불린다. “고졸과 서민의 법조인 진출을 막는 로스쿨 제도는 위헌”이라는 소송도 제기됐다. 내신성적과 비교과 활동을 두루 평가하는 학종도 ‘상류층 전형’이라며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교육공약 입안에 관여한 이범 교육평론가는 “금수저가 몇백만 원짜리 컨설팅을 받아 좋은 학생부를 만드는 게 공공연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엔 서울대 공대 교수가 논문에 아들을 공저자로 올려 같은 학부에 입학시킨 사실이 들통나 사표를 쓰기도 했다.

학종과 로스쿨이 교육 이념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지도 의문이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에서 영미법계의 로스쿨 제도는 대륙법계를 따르는 한국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로스쿨이 길러낸 얼치기 변호사들로 국민들까지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학종은 ‘개척하는 지성’이 아니라 ‘똑똑한 양떼’를 뽑는 전형이다. 착한 학생부 만들려면 고교생이 되자마자 지원 학과를 정해 ‘전공 적합성’이 높은 독서 동아리 봉사활동을 하고 교내 대회 수상 실적을 쌓아야 한다. 학생이 소화하기에 벅찬 학생부용 스케줄을 짜고 관리하려면 “엄마 말 듣지 말라”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의 말은 안 듣는 게 좋다. 학생부와 추천서를 써주는 교사에게 찍혀도 끝이다. 역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막판에 법대를 택했다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다 정학을 맞았다는 문 대통령은 학종 시대였다면 대학 못 갔다. 꿈 찾아 방황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학생을 응원하기는커녕 주홍글씨로 낙인찍는 전형이 교육적인가.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금수저를 돕는다고 비난받는 건 아이러니다. 로스쿨 제도가 실패한다면 개인과 정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법률 서비스 질의 하락은 국가적 재앙이다. 대학 입시제도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기르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성적으로 줄 세우기는 악(惡)이고 정성평가는 선(善)’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론 절대 풀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