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문닫고 부모 출근… 홀로 남아 낯선 공간 급식 줄 서기 엄두 못내… 여진 공포에 담요 쓴채 온몸 떨어
이재민 대피소 한쪽 놀이공간에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다. 포항시는 부모가 출근하는 등의 이유로 홀로 남은 아이들을 위해 22일 놀이공간을 조성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2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박모 군(9)은 출근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흥해중은 옥외대피소다. 엄마는 “그래, 거기서 만나. 아들” 하며 텐트 문을 닫아줬다. 이날 체육관에 친 텐트 10여 곳에는 어린이들만 남았다.
다른 대피소도 비슷하다. 이재민이 됐지만 부모는 다시 직장을 나가야 했다. 임시 폐쇄된 7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피소에 남는다. 2인용 텐트에 홀로 있다. 작은 여진에도 불안해한다. 이날 낮 12시 41분 규모 2.5 여진이 발생하자 한 아이는 담요를 뒤집어썼다.
새 구호품을 받거나 ‘이주 희망 신청서’ 같은 공문서도 챙긴다. 이재민 1000여 명이 흥해초교와 남산초교로 나눠 이주한 첫날인 19일, 구호품 줄에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구호품을 두고 “받아가지 않았느냐” “아니다” 실랑이를 벌이는 공무원과 어른들을 지켜봤다. 한모 양(10)은 “구호품을 받을 때 내가 이재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돈 더 받으려고 대피소에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어른을 보면 속상하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대피소 입구에서 목에 찬 명찰을 확인한 뒤에야 이재민을 대피소로 들여보낸다. 이재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게 답답한 아이들은 명찰을 벗고 다니기 일쑤여서 다시 대피소로 들어갈 때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장모 씨(45·여)는 “텐트에 명찰을 두고 나간 아이가 대피소 문 옆에서 위축돼 서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북구 9개 대피소 가운데 세 곳에 있는 심리지원센터에는 이날까지 아이들 16명이 찾았다. 부모 몰래 오는 경우가 많았다. “담요 같은 구호품을 달라는 엄마에게 화내는 공무원 아저씨를 봤다. 우리 가족을 거지 취급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다. 어른들이 주변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자 스트레스를 받아 담요에 용변을 본 아이도 있다. 김모 양(12)은 “언제 짐을 싸서 대피소를 옮기라고 할지 몰라 공무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엄마한테 카톡을 한다”고 했다.
포항=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