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억울함을 벗었지만 박 씨는 “차라리 징역살이가 낫다”고 했다. 사건 전에는 웃으며 안부를 건네던 이웃들은 그의 집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무서워서 못살겠다’ ‘더러운 놈’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박 씨가 18년간 알고 지내온 주민들이었다. 박 씨 부모의 삶도 달라졌다. 친척들의 연락이 끊겼고 경조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지인들은 “방송에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할 정도면 네 아들 성범죄자가 확실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8일 트위터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미성년자인 저는 지난해 저보다 스무 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박진성 시인임을 밝힙니다.” 이틀 뒤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나는 27세 여름 강간을 당했다. 이름은 박진성이며 직업은 시인입니다.”
박 씨는 2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 말했다. A 씨의 첫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출판사는 박 씨의 시집 출판을 중단했다. 시집, 산문집 등 책 4권이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박 씨로부터 온라인으로 시 쓰기 교육을 받던 수강생 10여 명도 모두 떠났다. 박 씨는 “가까이 지내던 문인들도 저를 전염병 환자 대하듯 꺼렸다”고 토로했다. “시가 저의 전부인데, 사람들이 더 이상 제 글을 읽지 않고 책을 낼 수 없게 돼 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는 5월 정신과 상담 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약을 한 번에 털어 넣어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박 씨는 “숨은 붙어 있지만 내 목숨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고 했다.
박 씨와 비슷한 처지에 몰렸던 부산 동아대 손모 교수(당시 34세)는 지난해 6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달 전 교내에 붙은 ‘거짓 대자보’가 발단이었다. 교수 중 누군가가 여제자의 속옷과 엉덩이를 더듬는 사건이 있었는데 피해자도 아닌 한 여학생이 손 교수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이다. 몇 달 뒤 ‘진범’이 드러나 파면됐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학생은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진실은 드러났지만 손 교수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박 씨도 성범죄 혐의를 벗었지만 그의 시집은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출판사의 ‘출고정지’ 처분은 사건 이후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