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최전선/ 40주년 맞은 게놈 해독기술]<3> 글로벌 생명공학기업 각축전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플라이드 바이오시스템과 이온토렌트 시스템이 생명공학기업 라이프 테크놀로지를 거쳐 서모피셔 사이언티픽사에 합병됐다. 일루미나의 또 하나의 강력한 라이벌로 2000년 설립됐던 454 라이프 사이언스 역시 처치 교수의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게놈 해독기를 선보였다. 일루미나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며 2007년 다국적 제약 업체 로슈에 인수됐지만 로슈는 2013년 사업을 중단했다.
2010년 미국 게놈 해독 기기(시퀀서) 개발사 ‘일루미나’가 처음 명단에 등장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신생 기업이 등장했다고만 생각했다. 당시 일루미나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용 기기를 만들다 갑자기 ‘개인 게놈 해독 서비스’라는 생소한 아이템을 들고 시장에 나온 기업이었다. 살벌한 경쟁 환경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실제로 일루미나는 이후 두 해 연속 명단에서 제외돼 반짝 주목을 받고는 사라진 수많은 회사의 전철을 밟는 듯했다. 하지만 일루미나는 2013년 다시 명단에 등장했고 2014년에는 1위 기업으로 꼽히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올해까지 50대 기업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애플, 페이스북 등과 함께 가장 많이 선정된 기록 중 하나다.
게놈 해독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일루미나의 돌풍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게놈 해독은 생명과학과 의료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다. 체질 등 부정확한 관찰과 경험에 의존해야 했던 개인별 처방을 유전자라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도록 토대 자체를 바꾼 것이다. 또 암 등 난치병과 각종 유전병 연구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각의 생물 종의 특성 차이를 DNA에 기반을 두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게놈 해독은 기초과학부터 상용기술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당시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하는 데 4만 달러 이상이 들었다. 일루미나는 이 가격을 급속도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보고 투자를 집중했다. 2년 만인 2011년, 가격을 애초의 10분의 1 이하인 4000달러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대박이 난 것은 2014년이었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하이 시퀀서(HiSeq)’ 시리즈를 내며 비용을 100만 원으로 줄였다고 선언했다.
이때 이미 일루미나는 게놈 해독 분야에서 독주 체제를 완성한 상태였다. 전체 해독 기기 시장의 70%를 장악했고, 당시까지 해독된 게놈의 90%는 일루미나의 기기를 거쳤다. 일루미나는 올해 1월에도 새 시리즈인 ‘노바 시퀀서(NovaSeq)’를 내며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옥스퍼드 나노포어는 비교적 최근 등장한 기술이지만 작년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게놈을 해독하는 등 활용을 늘리고 있다.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 제공
처치 교수의 병렬 해독 기법을 활용한 전혀 다른 해독 기술도 탄생했다. DNA를 최대 수만 개 염기 단위로 자른 뒤 이를 빛을 감지하는 미세한 구멍이 가득 나 있는 반도체 칩에 넣는다. 이후 칩 안에 형광 빛을 내는 염기와 DNA를 집어넣어 둘 사이의 반응성을 빛으로 측정해 실시간으로 염기서열을 읽어 들인다. 2004년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사가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팩바이오(PACBIO)라는 기기를 선보였다. 이 기술은 ‘3세대 해독 기술’로 분류된다.
처치 교수는 1995년에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 하나를 추가로 제안했다. 미생물의 막 단백질 가운데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있는 단백질을 이용해 DNA를 읽어 들이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 구멍에 DNA 이중나선 가닥을 풀어 넣으면 구멍을 통과하며 미약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킨다. 이 전기 신호는 염기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이를 구분해 염기를 알아낸다. 이 기술은 역시 3세대 해독 기술로, ‘게놈 해독계의 애플’로 불릴 만큼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창업한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가 이 기술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미니온’이라는 초소형 휴대용 해독기로 탄생했다. 다른 해독기도 크기가 방 안에 둘 정도로 작아졌고, 일부는 책상 위에 올려도 될 만큼 소형화됐지만, 미니온은 극단적으로 더 작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고, 노트북의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에 꽂아 사용할 수 있다. 들고 다니며 야외에서 해독이 가능한 수준이다. 실제로 2016년 지카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 브라질에 들고 가 지카에 감염된 모기의 게놈을 해독해 역학조사에 활용했다.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 역시 2016년에 이어 올해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50대 선도 기업에 포함됐다.
이 기술은 2014년경부터는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알려졌고, 지금은 기술 적용을 시험하는 단계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미생물 게놈 기업 ‘천랩’ 대표)는 “미생물 군집의 게놈을 해독할 때에 팩바이오를 많이 사용했는데, 최근 나노포어도 시험 중”이라며 “아직은 정밀도가 이슈지만, 장점이 많아 활용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