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대해 한국에 ‘3불’ 입장과 함께 실질적 조치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드 문제는 봉인됐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와 외교당국이 생각하는 ‘봉인’의 근거는 지난달 31일 한중 양국이 관계 개선을 위해 만든 ‘10·31 합의’다. 이 합의를 통해 사드 문제는 일단락 짓고 양국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우리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은 합의 후에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왕이(王毅) 외교부장, 외교부 대변인에 이르기까지 각급 외교 채널에서 사드 문제 해결을 언급하고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에 관련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왕 부장은 22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은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3불) 입장 표명을 중시한다”고 요구했다. 이후 중국 관영매체에서도 이행 촉구 공세가 이어졌다. 24일 런민일보 중·영문 자매지 환추(環球)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이틀 연속 한국에 3불 이행을 촉구하는 논평을 실었다. 글로벌타임스는 “양국이 지난달 관계 회복 방안을 발표했지만 사드 문제는 여전히 양국의 핵심 의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3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중한 관계가 낮은 단계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며 “양국 신뢰 관계가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추시보는 더 나아가 한국이 ‘3불 1한’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한’은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 시스템의 사용에 제한을 가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10.31 합의를 두고 중국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은 ‘한중 관계 악화의 끝’이라고 방점을 두는 데서 기인한다. 정부 내에선 중국 정부 내부를 겨냥한 발언에 일일이 반발하거나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10.31 합의문에 얽매여 ‘한중 간 각자 해석의 문제일 뿐’이라고 방관한다는 인상이 더 짙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 그 이상의 요구를 해올 때 새로운 대비책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정적인 상황을 전제로 답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단편적인 어휘에 집착해 큰 구도를 놓친다는 우려도 있다. 3불 ‘약속’이었던 중국 측 표현을 ‘입장 표명’으로 바로잡고 한숨을 돌리거나 22일 한중외교장관 회담에서 나온 ‘사드문제 단계적 처리’라는 대목을 ‘현 단계에서 문제를 일단락, 봉합’이라고 해명하는 게 대표적이다.
다음달 중국에서 개최되는 한중 정상회담을 댓가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이 바람직했는지는 다음달 베이징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한중 간 인식차가 존재하는 한 사드는 대화 테이블에 또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신나리기자 journari@donga.com
위은지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