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이재민 대피소 ‘빛난 시민의식’ 부족한 구호품은 노인-아이 먼저… 가구당 담요 1장, 두 가족 나눠 써 피해 적은 주민이 집 욕실 내주고 1만 자원봉사자들 궂은일 도맡아 수능 치른 수험생도 달려와 헌신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흔들림이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나섰던 집 앞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붙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주민 500여 명이 15일 오후 흥해실내체육관에 모였다. 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때만 해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이재민’으로 불릴 줄 몰랐다.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덮친 지 24일로 열흘을 맞았다. 아직 포항시민의 마음에는 불안과 공포가 여전하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절망이 가득했던 대피소였지만 이재민들은 난생처음 본 ‘대피소 이웃’과 서로 의지하며 견뎌 나갔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닥친 17일 공무원들이 담요와 핫팩 등 보온용품을 나눠 줄 준비를 했다. 금세 수십 m의 줄이 만들어졌다. 이재민 모두 힘들고 지친 표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빨리 좀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새치기는 물론이고 “한 장 더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있던 박정연 씨(45·여)는 “혹시 우리 때문에 못 받아가는 이재민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식사 때 노인과 아이를 먼저 챙기는 건 대피소의 불문율이 됐다.
대피소 생활이 5일째를 넘어서자 옷과 세면도구 등 생필품도 늘어났다. 구호품이 모자라자 이재민들은 반파된 집에서 힘들게 꺼내온 옷과 양말 등을 나눴다. 피해가 크지 않은 주민들은 이재민들에게 자신들의 집 욕실을 내주기도 했다. 한 이재민은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아이 친구의 부모인데 몸을 씻을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부모가 직장을 가느라 혼자 남은 아이들을 도맡아 돌보는 이재민도 있었다. 조모 씨(44·여)는 “옆 텐트에 8세, 10세 된 남매가 혼자 놀고 있더라. 부모에게 걱정 말라고 말했다. 행여 컵라면만 먹을까 봐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배식을 받아 먹게 했다”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 행렬이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은 수시로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24일에는 전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대피소를 찾았다. 온 마음으로 자신들을 응원한 이재민들에게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다. 장성고 3학년 박현지 양(18)은 뜨거운 행주로 이재민들이 먹고 남긴 식판을 닦았다. 또 텐트촌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박 양은 “무사히 수능을 치를 수 있었던 건 이재민들의 기도 덕분이다”라고 했다. 흥해고 김한솔 군(18)은 “이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활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왔다”고 말했다.
24일 현재 포항 지역 대피소 13곳에는 이재민 1349명이 머물고 있다. 열흘간 대피소를 찾은 자원봉사자는 1만103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