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위험판정’ 10곳중 9곳에 거주
토요일인 25일 오후 9시 반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원룸 건물. 6층 건물의 16가구 중 9가구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집집마다 설치된 보일러 연통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건물 가운데 출입문으로는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출입구 옆 기둥에 ‘위험!’이란 문구가 선명한 빨간색 표지가 붙어 있었다. ‘본 시설의 거주 및 출입을 금함’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긴급 위험도 평가 결과에 따라 건물 붕괴 위험이 커 출입을 완전히 제한한다는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이름의 표지다. 실제 필로티 구조의 건물 기둥 2개는 내부 철근이 크게 휘어진 채 드러나 한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입주민 A 씨는 나흘간 대피소 생활을 하다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는 “불안하지만 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에 지쳐 위험을 감수하고 돌아왔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별다른 출입 통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진 피해로 위험 판정을 받은 건물 26곳 중 25, 26일 10곳의 주민 거주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9곳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중 4곳은 철거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주민이 없는 건물은 1곳에 불과했다. 여진이 계속돼 추가 피해가 우려되지만 이들을 통제할 마땅한 규정이 없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정밀 안전진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위험 판정 건물의 거주를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설치된 지지대 등의 구조물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상환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작은 여진이라도 균열이 조금씩 누적되면 어느 한순간에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임시 구조물도 하중만 견딜 뿐 지진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힘에는 버티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주민은 건물의 위험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위험 판정을 받은 건물 10곳 중 4곳에는 아예 출입 제한 표지가 보이지 않았다. 위험 표지를 떼어낸 한 건물주는 “바로 옆에 있는 원룸은 다 ‘안전’ 등급을 받았는데 우리만 ‘위험’ 판정이면 세입자들이 다 떠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잘못된 정보’ 탓에 건물로 돌아오는 주민도 있다. 입주민 김모 씨(44)는 “건물주가 ‘임시 지지대를 세우면 출입해도 된다는 말을 시청에서 들었다’고 말해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위험 판정을 받은 건물에 대한 현장 관리도 들쭉날쭉하다. 건물 10곳 중 현장 통제가 이뤄지는 곳은 1곳에 불과했다. 25일 오후 11시 장성동의 한 원룸 건물에는 여러 겹의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었고 경찰관 2명이 계속 순찰을 하고 있었다. 이 건물 내 12가구는 모두 비어 있다. 건물주 김모 씨는 “지진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경찰이 배치돼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항=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