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어서 깜짝 놀랄 만한 변화는 아니다. 대법원은 일정 경력 이상의 법관을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로 분리하는 ‘법관인사 이원화’를 시행하기로 하고 2010년부터 고법 부장 승진과 별도로 고법판사를 보임해왔다. 이제는 시행 초기에 보임된 고법 판사들의 사법연수원 기수가 고법 부장 승진 대상자와 엇비슷해졌으니 고법 부장 승진을 중단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다.
대다수 판사는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를 반기는 분위기다. ‘지방법원 배석판사-단독판사-부장판사-고법 부장-법원장’으로 이어지는 법관 서열에서 고법 부장은 유일하게 심사와 승진이 이뤄지는 자리다. 지법 부장판사까지는 시간만 흐르면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고법 부장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고법 부장 승진제도를 당장 없애는 것이 옳은가는 의문이다. 승진제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일단 법관이 되면 평생 다른 법관과 비교당하거나 경쟁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재판을 게을리 하는 판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은 당장 예상 가능한 문제다. 법관은 탄핵을 당하거나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파면이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한 신분 보장을 받는다.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는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판사 신분을 박탈하는 연임심사도 헌법상 10년에 한 번만 할 수 있다. 판사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삐딱하게 굴면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
고법 판사 보임이 고법 부장 승진 심사처럼 ‘필터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맡는 재판의 심급이 달라지는 것이 전부인 고법 판사 보임이 행정부처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법 부장 승진과 비슷한 수준의 ‘당근’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를 찾기 힘든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좋은 재판’을 기대하라는 것은 그저 법관의 선의(善意)에 기대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법원 내부에서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는 국민을 위한 개혁은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법관 인사제도 개선 논의는 사법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이뤄져야 하고 법관의 민생보다는 국민의 이익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어떤 재판이 ‘좋은 재판’인지를 평가할 사람은 법관이 아니라 법률 서비스의 이용자인 국민이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