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 끝으로 발레단 떠나는 황혜민-엄재용 부부
2002년부터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황혜민 엄재용 부부는 그동안 900회가 넘는 무대에서 함께 춤을 췄다. 26일 두 사람이 보여준 마지막 무대는 오랫동안 자신들을 사랑해준 관객을 향해 그들이 가장 자신 있는 춤으로 쓴 이별 편지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UBC) ‘오네긴’이 공연됐다. 이날 주역은 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39)과 그의 남편 엄재용(38). 이들의 UBC 은퇴 공연이자 황혜민의 현역 무용수 은퇴 무대였다. 이미 같은 장소에서 두 차례 공연이 있었지만 이날은 말 그대로 마지막 무대였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김리회 이영철을 비롯해 김선희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주원 성신여대 교수 등 전현직 발레 무용수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문훈숙 UBC 단장이 공연 전 작품 해설을 위해 등장했다. “춤이 삶 자체의 표현이었던 두 사람을 눈물과 열정으로 기억해 주세요.” 문 단장은 두 사람을 언급하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발레 인생을 이날 무대에 고스란히 녹여내려는 듯 보였다. 1막과 3막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추는 파드되는 사랑에 대한 설렘, 열정, 회한 등을 농밀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3막에서 타티아나(황혜민)가 사랑했던 오네긴(엄재용)을 단호하게 떠나보내는 연기와 춤은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결정한 발레리나가 발레를 떠나보내는 모습이 투영되듯 가슴이 아릴 정도였다. 이런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공연 뒤 감사 인사를 하는 황혜민과 엄재용을 향해 관객들이 ‘발레 해줘서 고마워♥’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커튼이 완전히 닫히고도 많은 관객이 남아 박수를 보냈다. 일부 관객은 한참 동안이나 출연자 출입구 앞에서 서성이기도 했다. ‘발레 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은 했지만 보내기 싫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연 다음 날인 27일 황혜민은 미용실로 향했다. 무용수로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짧게 머리를 자르고 탈색했다. UBC 관계자에게 전해 들은 그의 말이다. “어제 무대에서의 벅찬 가슴이 식지 않았어요. 여러분이 있어 제가 존재했고 무대가 있어 행복했어요. 16년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제2의 인생의 무대를 즐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