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별난 소비 성향을 설명했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소유해 자신들의 계층을 드러내고자 일부러 매우 비싼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이죠. 그의 ‘유한계급론’(1899년)이 나온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과시적 소비 성향은 존재합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사진)도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한 소비 성향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구별짓기’(1979년)라는 개념으로 현대인의 소비를 통찰했습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닭의 무리에서 학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읽은 겁니다.
소비 여력이 없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롱패딩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교복’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한 점퍼 유행의 데자뷔입니다. 획일화된 교복 문화를 탈피하고자 하는 문화적 욕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일종의 구별짓기 현상입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소유함으로써 구별짓기를 하고, 승마와 요트 등 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스포츠를 즐김으로써 새로운 계층을 형성합니다. 명문 학교가 엄격한 드레스 코드(dress code)로 다른 집단과 다른 문화와 취향을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왜 유행을 좇는 소비를 할까요. 시류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는 교류하는 동년배 집단이나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현상을 편승 효과 또는 밴드왜건 효과라고 부릅니다.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자면 구별 지우기에 의해 구별짓기가 무력화됩니다. 가령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면 그 가방에 의한 구별짓기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우리는 과연 소비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요. 베블런과 부르디외의 생각을 읽다 보면 소비의 주체가 나인지 타자인지 모호해집니다. 소비의 시대에 우리는 존재의 삶보다는 소유의 삶에 집착해 자아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