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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관왕묘의 財神 관우가 유커를 부른다면

입력 | 2017-11-29 03:00:00


서울 숭인동의 동관왕묘. 유적 정비사업을 마친 후 2018년 하반기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삼국지’에서 촉나라 장수로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인 관우(關羽·?∼220년)는 죽어서 무신(武神)이자 재신(財神)으로 변신했다. 지금은 성제군(聖帝君)급 반열에 올라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령스러운 신이 됐다. 중국에는 문신(文神)인 공자사당(孔廟)보다 관우사당(關王廟, 關帝廟)이 압도적으로 많이 세워져 있다.

관우 신의 인기몰이는 중국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만, 홍콩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화교들에게도 ‘상인의 수호신’으로서 숭배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인과 전 세계 화교들이 운영하는 건물이나 상점 한쪽에서는 붉은 대춧빛 얼굴의 관우 신을 모신 영정이나 신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원래 무신인 관우가 재신이 된 이유도 흥미롭다. 상거래에서 필요한 신용과 의리, 불굴의 개척 정신이 관우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관우와 동향인 산시(山西) 출신 진상(晉商)들의 마케팅 전략이 개입돼 있다. 명청(明淸) 시기에 중국 대륙을 누비던 진상들은 주요 활동지에 유럽의 길드 조합과 유사한 회관(會館)을 세운 후 관우 신상을 모시고 축제와 상거래를 여는 등 분위기를 띄웠다. 돈 잘 버는 상인들이 특별히 받드는 신이니 사람들도 선뜻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도 관우 신과 인연이 깊다. 16세기 말 정유재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군은 군신(軍神)인 관우를 ‘모시고’ 왔다. 관우 신에게 무운(武運)을 비는 관왕묘(關王廟)를 조성한 것이다. 당시 명나라 장군들은 서울 2곳(동관왕묘, 남관왕묘)과 지방 4곳(강진, 안동, 성주, 남원)에 관왕묘를 지었다. 이후 관우 신앙은 조선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한국의 관왕묘는 관우 하면 일단 제의용 향부터 찾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역사 스토리가 담겨 있는 데다, 한국의 독특한 명당 풍수 문화가 덤으로 얹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동대문 밖 숭인동의 동관왕묘(동묘)와 전남 완도군의 고금도 충무사(관왕묘)다.

서울의 동관왕묘는 정유재란 직후인 1599년 명나라 황제 만력제가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고, 조선 백성들이 3년간 피땀을 흘려 1601년에 완성한 한중 합작품이다. 조선의 일을 자기 일처럼 대해 ‘조선천자’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만력제에게는 꿈에 관우가 나타나 조선을 도우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전설도 따라다닌다.

중국 황제가 관심을 보인 만큼 동관왕묘 터를 잡는 데 신중을 기했다. 조선의 지관 박상의와 중국의 풍수사 섭정국이 나섰다. 박상의는 한양도성의 풍수적 약점을 보완하는 비보책(裨補策)까지 고려해 현재의 터를 지목했다. 천기(天氣) 기운이 왕성해 관우 신의 위격에 어울리는 만큼 섭정국도 동의했다. 이렇게 동관왕묘는 조선과 명의 입장을 함께 고려한 사당이자 기도발도 잘 듣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고금도의 관왕묘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이곳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 중국의 수군 총사령관 진린이 고금도 군영에 머물면서 직접 지은 사당이다. 이순신과 함께 노량해전을 치른 진린은 철군하면서 마을사람들에게 관왕묘 제사를 이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약속은 300년 넘게 지켜졌다.

이 터 역시 풍수사의 작품이다. 진린의 처남이자 뛰어난 풍수 실력자인 두사충이 개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린 휘하에서 비장(작전참모장)으로 활동한 두사충이 관왕묘 조성에 참여했다는 문헌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이시발 등 조선 대신들에게 잡아준 묏자리들과 관왕묘의 지기(地氣) 기운을 비교해보면 같은 사람의 솜씨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관왕묘에서는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관우를 중심으로 진린, 등자룡 등의 위패가 놓여 있던 관왕묘는 일제강점기 때 크게 훼손됐다가 광복 이후 재건하면서 이순신을 모신 충무사로 바뀌었다. 현재 완도군은 충무사 바로 맞은편 지점에 관왕묘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설계 작업을 마치는 대로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원래 터에 복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당 같은 제의 시설은 역사적 의미와 함께 기운이 서린 곳에 지어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서울의 동관왕묘도 대대적인 유적 정비사업을 마친 후 내년 하반기에 재단장한 모습으로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서울과 지방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관왕묘 복원 및 재건 사업이 귀환하는 유커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소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