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귀순병사 몸에 흐르는 피
세금의 가치를 이국종처럼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나는 어떤 재정학자 입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세금 기사도 많이 썼지만 ‘탈세’니 ‘혈세’니 하는 다분히 감정 섞인 정책 비판이었지, 세금과 국민의 자긍심을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세금 빼먹는 도둑들이 하도 많아서일까, 징세 공무원을 세리(稅吏)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국종은 아주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해 그곳에서 석사 박사까지 했다. 그의 표현대로 ‘지잡대’ 출신이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목숨을 구해놓고도 “별것 아닌 환자 데려다가 쇼 한다”는 음해에 시달렸다. 이날 브리핑에서 그는 “이국종, 네가 ‘빅5’(서울대, 세브란스, 아산, 삼성, 서울성모병원) 중 하나이거나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면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엉겼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의료계의 ‘학벌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설움이 묻어 있는 말이다. 그가 받는 연봉 1억2000만 원은 건강보험관리공단이 보험료를 삭감하면 월급에서 깎인다. 그래도 그는 하루하루 전투 치르듯 메스를 쥐고 있다.
2013년 8월 방영한 EBS 다큐멘터리 ‘명의3.0’은 운명의 1시간을 가르는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긴박한 상황을 클로즈업했다. 휴일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일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돼 실려 온 택배기사, 10층 공사 현장에서 추락한 건설근로자 등 하나같이 몸으로 먹고사는 육체노동자, 부양가족 4∼6명이 딸린 가장들이었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빠를 잃게 된 가족들은 이국종의 팔을 부여잡고 “제발, 한번만 살려 달라”고 울며 매달린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골든타임에 헬기는 늦게 오고, 현장에서 치료할 의사가 없어 방치되는 응급환자들이 전국에 넘쳐흐른다. ‘문재인 케어’보다 시급한 일이 권역외상센터를 지원하는 것이다.
낯 뜨거운 홍종학 내로남불
이국종의 브리핑 하루 전날 청와대에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다. 나는 격세(隔世) 증여, 쪼개기 증여가 무언지 이번에 알게 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6년 동안 일했다는 사람이 한 일로 믿기지 않는다. 그에게 세금이란 법망의 울타리를 교묘히 빠져나갈 재테크 대상이었다. 연세대를 나온 게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는 책까지 썼을까.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