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노동이슈]최저임금 15달러로 올린 미국 시애틀
한 여성이 편의점 씨유(CU)가 설치한 셀프 결제 시스템 ‘CU바이셀프’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국내 편의점 업계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이 같은 무인 결제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BGF리테일 제공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두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워싱턴주 시애틀시의 ‘최저임금 인상 실험’에 대한 학계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연구 결과들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목표로 정부 재정까지 투입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적잖은 교훈을 던진다.
○ “고임금 근로자가 오히려 혜택”
워싱턴대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임금, 그리고 저임금 고용: 시애틀의 근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시애틀의 실험이 저임금 일자리와 임금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9.47달러에서 11달러로 올릴 때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13달러로 인상한 뒤 시급 19달러(2만460원) 미만 근로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이 모두 감소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 후 저임금 근로자의 총근로시간은 9.4%(350만 시간) 줄었고, 월평균 임금은 오히려 125달러(13만4620원) 감소했다. 고용주가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애틀 전체의 연간 근로시간은 1400만 시간이나 감소했고, 이를 일자리로 환산하면 약 6540개가 줄어든 셈이다.
연구진은 “최저임금을 1달러 올리면 약 3달러의 고용 기회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애틀처럼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과 고용만 증가하고 저임금 근로자는 위협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대의 연구는 일자리 수가 아니라 근로시간과 실질 소득을 다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오히려 일자리 질 좋아졌다”
특히 UC버클리 연구팀은 워싱턴대의 연구가 경기 호황이라는 변수를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최근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일 정도로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시애틀 역시 최근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연구팀은 “경기 호황으로 전체 근로자의 임금이 인상되면서 통계적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든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도 “저임금 근로자가 해고된 것이 아니라 저임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간지인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워싱턴대의 연구가 “최저임금의 인상 효과와 노동시장의 변화를 혼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는 것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오인했다는 얘기다. 실제 시애틀의 올해 9월 실업률은 3.8%로 지난해보다 0.1%포인트 낮아졌고, 미국 평균(4.2%)보다 0.4포인트 낮다.
○ “두 연구 모두 맞다”는 의견도
논란이 증폭되자 미국 조지아대의 제프리 도프먼 교수(경제학)는 “두 연구 모두 말이 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경제지 ‘포브스’에 게재했다. UC버클리는 요식업종의 취업자 수에 집중했고, 워싱턴대는 근로시간과 소득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결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한국에서도 불붙을 논쟁거리다. 아직까지 한국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증감과 근로자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하게 조사한 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저임금 논의가 정확한 실증 연구도 없이 정치적으로만 흐른 셈이다. 지금도 경영계와 노동계는 최저임금에 상여금과 수당 등을 포함시켜 산입 범위를 넓힐지를 두고 날카롭게 대립할 뿐이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내년 1월 최저임금 인상 즉시 정부가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일자리 및 근로자 소득 간의 상관관계를 밝혀 제대로 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