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롱폼 저널리즘’ 르카트뢰르
[1] ‘롱폼 저널리즘’을 표방한 프랑스 뉴미디어 ‘르카트뢰르’의 샤를앙리 그루 공동 창업자가 9월 23일 파리 13구의 한 건물 앞에서 뉴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2] 르카트뢰르 웹사이트 모습. 기사 중간에 여러 장의 사진과 음악, 동영상을 삽입해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한다. [3] 그루 공동 창업자는 한 달에 한 번 독자들과 만나 기사 품평, 회사의 방향성을 토론한다. 파리=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르카트뢰르 웹사이트 캡처·르카트뢰르 페이스북
이런 요구를 반영해 등장한 프랑스 뉴미디어가 있다. 프랑스어로 ‘오후 4시’를 뜻하는 ‘르카트뢰르’다. 왜 카페 이름 같은 ‘오후 4시’를 사명으로 썼을까. 바로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오후 4시경 기사를 올리기 때문이다.
르카트뢰르는 웹사이트(lequatreheures.com)에 매달 한 번 기사를 게재한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을 취재한 A4 용지 대여섯 장 분량의 긴 텍스트에 음악, 동영상, 사진, 일러스트 등을 가미했다. 르카트뢰르 기자들은 스스로를 ‘기자’가 아닌 ‘작가’라고 부른다. 매일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하는 기성 언론의 문법과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뉴스를 제공하는 셈. 이런 수고와 노력을 인정한 3000명의 유료 독자가 연 19.8유로(약 2만5740원)의 구독료를 기꺼이 낸다. 이 금액이 부담스러우면 한 달에 1.65유로(2145원)를 내도 된다.
르카트뢰르는 사무실도 없다. 샤를앙리 그루 공동 창업자(30) 등 10명 내외의 젊은 프리랜서 언론인이 사안에 따라 뭉쳤다 헤어졌다 하며 기사를 만든다. 회의는 온라인으로 하고 기사는 각자 집과 취재 현장 등을 오가며 쓴다. 왜 이런 독특한 방식을 택했을까. 9월 23일 프랑스 파리 13구의 한 카페에서 그루 공동 창업자를 만났다.
“봉주르(프랑스어로 좋은 날)!” 가냘픈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루 창업자는 청소년 같은 인상이었다. 165cm 남짓한 작은 키에 가냘픈 몸매, 흰 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입은 모습이 그랬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존재 의의, 뉴미디어의 방향을 얘기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고 통찰력이 넘쳤다.
그루 창업자는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하고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 그랑제콜 CFJ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이후 1년간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피가로’ 기자로 일했다. 온라인 뉴스팀 정치·국제부에서 ‘빵틀에 찍어내듯’ 수많은 속보를 썼지만 기억에 남는 기사가 거의 없다고 했다.
“논란을 일으킨 정치인, 흥미 위주의 짧은 기사만 썼다. 그 기사를 쓰는 나조차 ‘왜 이런 기사를 써야 하나’ 싶었다. 진짜 독자들이 원하는 뉴스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루 창업자의 이런 고민은 자연스레 뉴미디어 창간으로 이어졌다. 2013년 5월 CFJ에서 만난 12명의 동료 언론인과 함께 “제대로 된 롱폼 저널리즘을 구현해 보자”며 르카트뢰르를 만들었다. 대부분 그와 비슷한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언론인들로 4년이 지난 지금 이 중 6명만 남아 함께 일하고 있다. ‘기업’으로서의 뉴미디어의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한 달에 한 번 올라오는 기사는 어떤 내용일까. 그루 창업자가 자신 있게 내세운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 북동부 작은 마을 ‘비에르 알르랑’에서 가정 폭력으로 숨진 제랄딘 소이에라는 여성의 이야기다.
“피해자가 어떤 학대를 받았는지, 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는지, 가정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이를 위해 수백 명의 마을 주민을 모두 만났다.”
처음 주민들은 르카트뢰르 취재진을 경계하며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질문 몇 마디 던지고 갈 사람으로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취재팀은 아예 마을에 상주하며 주민들을 기다렸다. 그러자 서서히 마음이 열렸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런 방식으로 마을 주민을 모두 인터뷰하고 남편의 학대로 숨진 다른 여성들 취재까지 더하면서 약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르카트뢰르 기자들은 프랑스 내 난민촌 르포를 쓸 때도 최소 3∼4개월을 그곳에 거주한 뒤 기사 작성을 한다. 그는 “난민촌을 잠시 방문하고 쓰는 기사에는 ‘난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깊이 있는 취재의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그루 창업자는 “우리의 기사는 단순한 롱폼 저널리즘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르포에 가깝다”며 “구독료 수입의 대부분을 동영상 및 배경음악 제작과 편집에 쓴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에서 오후 4시는 커피와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본다. 나는 우리 독자에게 오후 4시에 펼칠 ‘책’을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뉴스를 만든다”고 했다.
○ 독자와의 활발한 소통 강조
르카트뢰르도 위기는 있었다. 2015년 초 유료 구독자가 잠시 줄어든 것. 그는 “당시 북한 핵, 중국의 팽창 등 무거운 주제의 국제 기사를 주로 다뤘다. 기성 언론의 한계를 느끼고 뉴미디어를 시작했지만 나도 그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독자들이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있는 기사 말고 르카트뢰르만의 기사를 읽고 싶다.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 지역 사회의 민낯을 다뤄달라’는 요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루 창업자는 월 1회 독자들과 ‘번개 모임’을 갖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활발히 이용하는 소셜 인플루언서답게 소셜미디어에 번개 장소와 시간을 공지하면 평균 100명의 독자가 모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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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 창업자는 “기성 언론의 독자가 수동적이라면 뉴미디어 독자는 사실상 기자와 같이 기사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며 “뉴미디어의 성공은 결국 독자와 얼마나 잘 소통하고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공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기꺼이 돈을 내는 독자들을 위해 이 정도 노력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