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19> 어린이 통학안전, 교육이 답
11월 23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앨러스리에서 수업을 마친 세인트메리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자의 보호를 받으며 ‘워킹스쿨버스(WSB)’로 줄지어 가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오클랜드시 교통안전 교육 프로그램 ‘트래블와이즈’에 참여한 프루트베일 초등학교 학생들이 스피드건으로 학교 주변을 지나는 차량의 과속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오클랜드=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익히는 안전
WSB는 1992년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시작한 어린이 통학 프로그램이다.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20여 명의 어린이가 줄지어 걸어가는 걸 말한다. 이 행렬이 마치 버스 한 대처럼 보이는 데 착안했다.
차도를 건널 때는 선두의 봉사자가 차량이 멈췄는지 확인했다. 뒤쪽의 봉사자는 마지막 어린이까지 건너는지 확인한다. 에밀리 양은 “WSB에서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걸을 수 있어 좋다. 함께 걸으니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날 자원봉사에 나선 클란디아 씨는 다섯 자녀의 어머니다. 그는 “WSB 활동을 하면서 그만큼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잘 알게 됐다. 우리 아이의 통학 안전도 더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에서만 349개교에서 4200명의 학생이 WSB로 통학한다. 클란디아 씨 같은 봉사자는 1470명이다. WSB가 운영되는 통학길은 374개에 이른다. 세인트메리 초교 교감 클레어 씨는 “학생들은 친구와 놀면서 오갈 수 있고, 학부모는 일 때문에 마중 나가지 못해도 걱정을 덜 수 있어 인기가 많다. AT에서도 항상 꼼꼼히 관리해준다”고 말했다.
○ 어린이 교통안전의 시작은 교육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학생들이 측정한 차량은 정확히 100대. 이들은 AT의 교통안전 교육프로그램 ‘트래블와이즈’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 주변 교통환경을 점검하는 임무다. 트래블와이즈는 오클랜드 전역에서 시행 중이다. 어린이들이 학교 주변의 위험한 교통환경을 지역사회와 경찰, 언론에 직접 알려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트래블와이즈 교관 러셀 프렌치 씨(54)는 “350호주달러(약 30만 원)짜리 스피드건을 아이들에게 쥐여주는 것만으로 교육은 물론이고 학교 주변 교통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트래블와이즈는 2003년 시작했다. 현재 오클랜드 360개교의 학생 19만5500명이 참여한다. 학생의 연령과 생활 주기, 거주 지역 등에 따라 △보행 및 자전거 △스쿨존 차량 속도 감소 캠페인 △청소년 운전자 훈련 등 맞춤형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최소 1년 이상 장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진다.
기술 발전에 따라 교통안전 교육도 다양해지고 있다. AT는 지난해 청소년 운전자 훈련을 위한 가상현실(VR) 콘텐츠를 만들었다. 오큘러스VR의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쓰면 실제 운전하는 것 같은 경험을 어디서나 할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교육이 가능해졌다. 7만5000뉴질랜드달러(약 6000만 원)를 들여 자체 개발했다. 20년 이상의 교통안전 교육 경험과 경찰 등 관련 기관의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밑거름이 됐다.
앨리 존스 AT 지역교통팀장은 “차량을 이용한 통학이 늘면서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주변의 교통환경이 심각해졌다. 어릴 때부터 차량을 이용하기보다 걷는 것이 더 안전하고 편하다는 인식을 주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민우 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오클랜드의 트래블와이즈는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경찰의 긴밀한 교통안전 교육협력체계 덕분에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특히 모든 활동에 학생이 주체로 참여하고 교사는 지원하는 모습이 국내 교통안전 교육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