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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정훈]트럼프 김정은의 노벨평화상

입력 | 2017-12-02 03:00:00


박정훈 워싱턴특파원

관상가들은 김정은의 상이 좋지 않다고들 한다. 코가 낮고 입가가 처져 재물복이 없고, 얼굴 크기에 비해 귀와 귓불이 작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영국의 예언가 크레이그 해밀턴파커는 “빠르면 이달 김정은 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상이나 예언은 곧잘 뜬구름 잡는 말로 끝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이런 말에도 귀가 솔깃한다. 김정은이 운명과 팔자를 고치려면 3대가 공을 들인 핵과 미사일을 미국과 주변국에 잘 팔아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호감형은 아니다. 배우 조지 클루니를 닮은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는 “트럼프의 표정에선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필요하면 누구라도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게 트럼프의 용인술이다. 트럼프의 뒤통수에다 “멍청이”라고 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머지않아 잘릴 처지다.

지난달 30일 갤럽 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36%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75%(1일 한국갤럽 발표)의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백인 중산층은 트럼프가 대선 때처럼 ‘침묵하는 다수’로 남아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있다. 최근 만난 50대 백인 변호사는 “트럼프 말고는 어떤 정치인도 미국의 불합리를 바로잡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재선을 하려면 먼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하원의원 전원(435명)과 상원의원 3분의 1(33명)을 뽑는 선거에서 지면 곧장 식물 대통령이 된다. 그러려면 북핵 해결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세제와 건강보험 개혁, 반이민 정책까지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더 그렇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미워할 수만도 없다. 5월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나면 영광”이라고 한 건 진짜 속내로 보인다. 북한 미사일 덕에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이용법’ 개인 교사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독재자 성향이 강한 두 사람은 미묘한 관계다. 트럼프는 선거에 이기려면 김정은이 필요하고, 김정은은 핵무기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트럼프를 이용해야 한다. 그게 정치인 트럼프와 김정은 관계의 본질이다.

핵을 손에 쥔 김정은은 이제 협상에 승부를 걸 것이다. 사실 북한의 몇 기 안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는 ①SM-3→②지상기반요격체계(GBI)→③고고도방어체계(사드)→④PAC-3로 이어지는 미국의 4단계 미사일방어체계를 뚫기 힘들다. 그래서 기대만큼 협상력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포커 게임에서 ‘에이스 포카드’를 들었다고 꼭 이기는 건 아니다. 트럼프는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쥔 미국 대통령이다.

그래서 협상 시점이 중요하다. 지난달 30일 워싱턴을 찾은 외교당국자는 “북한이 핵 완성을 선언한 것은 과학적 의미라기보다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며 “완성 전에 오히려 협상력이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핵 포기 여지가 있을 때 값을 더 쳐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김정은은 제재가 자신을 무너뜨리기 전에, 또 중간선거 전에 청구서를 내밀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트럼프에게 대접을 받는다.

199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소련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 등을 체결하면서 냉전 종식의 주역이 됐다. 머지않아 만날 수 있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레이건과 고르비처럼 협상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노벨 평화상 주인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두 사람이 팔자에 없는 상을 받더라도 비핵화가 성사되는 그날이 오기만 한다면, 삼각산이 춤추고 한강 물이 용솟음칠 것이다.

박정훈 워싱턴특파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