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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못 끊는다면… 흡연자에게 덜 해로운 제품 쓰게 하는 게 현실적”

입력 | 2017-12-04 03:00:00

영국 최대 금연단체 아놋 대표
“액상형 전자담배 덜 해로워… 금연 돕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영국은 세계에서 담배 규제가 가장 강한 나라로 꼽힌다. 영국 담뱃갑에는 담배회사 로고도 제품명도 없다. ‘민무늬 담뱃갑’이다. 담배 판매점의 진열대는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철제 셔터로 가려져 있다. 강한 규제 덕분에 영국의 15세 이상 남성 흡연율은 17.7%로 한국(31.4%)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액상형 전자담배에는 유독 관대하다. 영국 정부는 흡연자들에게 액상형 전자담배를 권장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지난달 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만난 영국 최대 금연단체 ASH(Action on Smoking & Health) 데버라 아놋 대표 (사진) 역시 이런 정부 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각종 금연 정책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지 못한 흡연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덜 해로운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71년 영국왕립의사협회가 세운 ASH는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금연단체다. 아놋 대표는 영국 정부의 담배 정책 자문기구의 일원이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담배 규제 전문가다. 그는 평소 담배회사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담배 규제에 앞장서 왔으며 담배 회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물론 ASH가 처음부터 액상형 전자담배를 장려했던 건 아니다. 그는 “오랜 연구 결과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훨씬 덜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면서도 “금연을 돕는 수단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를 최대한 활용하되 비흡연자, 특히 청소년이 전자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놋 대표는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아직 객관적인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고 전제한 뒤 “담배 유해성은 대부분 연소 과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일반 담배보다는 덜 해로우면서 전자담배보다는 더 해로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이어 “담배회사들은 오랫동안 과학적 증거를 조작해 왔기 때문에 담배회사가 내놓은 증거로는 그 유해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물질이 일반 담배의 10% 수준’이라는 담배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액상형 전자담배와 마찬가지로 유해성을 규명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연구가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궐련형 전자담배 증기에서 나오는 독성뿐 아니라 건강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