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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동아]염증 억지로 없애면 세포 퇴화 위험

입력 | 2017-12-06 03:00:00


얼마 전 한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발바닥 통증으로 벌독 주사를 수차례 맞은 후에도 나아지지가 않아서다. 환자는 통증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호소했다. 환자를 유심히 살펴보니 다른 발과 비교했을 때 벌독이 들어간 발의 형태가 달랐다. 피부의 변화나 지방이 있어야 하는 부위가 함몰된 정황으로 봐서는 벌독이 아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해 봤다.

벌독 주사는 염증유발물질을 넣어 염증을 촉진시키고 상처를 빨리 낫게 하려는 방법이다. 피부가 복구되려면 반드시 염증 반응이 있어야 한다. 다친 부위에 염증이 생겨 부으면 평소 피가 잘 가지 않던 부위 깊숙이 피가 잘 돌게 되고 염증세포에서 나온 분비물질들이 새로운 조직이 생기도록 돕는다. 하지만 스테로이드가 들어가면 염증이 가라앉으면서 통증은 줄어들지만 새로운 조직이 발생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벌독은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이고 스테로이드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이니 서로 상반된 것이다.

우리 몸의 일부분이 망가지면 염증 반응으로 새로운 세포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때 줄기세포가 작동돼 망가진 부분을 수선한다. 예를 들어 피부에 화상을 입었다고 하자. 줄기세포가 없다면 상처가 난 부위에 새로운 세포가 생기지 않고 비닐 껍질 같은 조직으로 덮이게 된다. 이런 조직들은 고유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통증의 많은 부분이 염증에서 시작된다. 스테로이드와 같은 염증을 없애주는 약을 쓰면 통증을 쉽게 가라앉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염증을 강제로 가라앉히면 재생도 멈춰진다는 것이고 이는 곧 극심한 퇴화를 의미한다. 수개월의 통증 개선을 위해 수년의 퇴화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어본다면 다른 부작용까지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이 한발 물러설 것이라 생각한다.

염증과 더불어 병변을 고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상처기 전류’다. 어느 부위든 상처가 나면 뇌는 상처기 전류를 만들고 이것에 의해 줄기세포의 분화가 유도된다. 혈액 내 줄기세포도 상처가 난 부위에 모여든다.

상처기 전류는 우리 몸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주사나 침과 같은 자극에 의해 고의적으로 발생시킬 수도 있다,

피부와 같은 부위는 눈에 잘 보이지만 척추 내부와 같은 부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기공명영상(MRI) 사진과 같은 첨단 장비로도 그 안이 어떤 상황인지 훤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척추와 관절은 적절한 움직임에 의해 위치를 파악하고 혈액을 공급받으며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면서 젊음을 유지한다. 그러나 염증을 없애는 물질이 자주 투여되거나 수술 등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된다면 퇴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근육의 적당한 움직임이 없어도 퇴행은 빨리 온다.

만성통증, 특히 척추관절 치료에 있어서 두 가지를 세심하게 확인해야 한다. 하나는 ‘퇴화가 되더라도 약물로써 염증을 멈추게 하거나 수술과 같은 방법으로 관절을 움직이지 않도록 해 아프지 않게 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좀 아프더라도 재생을 촉진하는 과정을 도와줄 것인가’이다.

환자의 질병 정도가 다르고 주위의 상황이 다양하니 획일화된 결론은 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환자의 평생을 고려해 보면 지나치게 많은 손해는 당연히 주의할 일이다.


안강 안강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