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이 4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재부 담당 예산국장이 힘들다고 고개를 흔들기에 제가 예산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고 압박했다”는 글을 올렸다. 전북 남원-임실-순창이 지역구인 이 의장은 예산안 처리 협조를 무기 삼아 순창 밤재터널과 임실 옥정호 수변도로 예산을 확보했다고 자랑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비서실장인 김정우 의원은 수도권 경부선 급행전철 사업을 당초 정부안보다 100억 원을, 자유한국당 예결위원인 민경욱 의원도 인천발 KTX 사업 예산을 100억 원 더 따냈다.
428조8339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당초 정부안보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서 1조3000억 원가량이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올해 예산 대비 20% 줄여 잡았던 SOC 예산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민원 요청이 막판까지 쇄도해 결국 19조 원으로 책정됐다. 의원들이 쪽지를 전달하는 것도 모자라 ‘카톡 청탁 문자’가 회의 중에 예결소위 간사와 실세 의원들 휴대전화로 수시로 들어갔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는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예산이 수억 원씩 늘어나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토로했다.
쪽지 예산은 국회법과 청탁금지법을 위반하는 범법 행위다. 여야가 예산안 처리 시한에 쫓겨 3당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물밑거래로 야합하고, 날림 심의를 일삼는 것이야말로 ‘국회 적폐’다. 기재부가 예산 배정이 어렵다고 판단했음에도 의원들이 압박, 강요로 막바지에 끼워넣는 지역구 민원 사업 예산이 해마다 수천억 원이나 된다. 지방선거를 앞둔 의원들이야 지역구에 자신의 능력을 선전할 수 있어 좋을지 모른다. 이 때문에 행정부에 의해 편성된 예산 분배가 왜곡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와 낭비가 벌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