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장성’에 갇힌 한국관광]<2> 쇼핑만 하는 싸구려 투어
5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한국 면세점들의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계속 커지면서 이들을 데려다주는 대가인 ‘모객 인센티브’의 규모도 연간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 관광산업이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에게 크게 의존하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면세점 투어’가 한국 관광의 중심 콘텐츠가 돼버렸다. 그 때문에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한국의 면세점 투어조차 ‘유커 싸구려 관광의 한 축’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커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돈 주고 유커를 모셔오는 ‘모객 인센티브’ 제공은 물론이고 밀수 보따리상의 판로 역할까지 하는 기형적인 구조까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관광을 풍요롭게 할 다양한 관광콘텐츠 개발은 늘 뒷전이다.
○ 유커조차도 비판하는 ‘한국 관광의 콘텐츠 부족’
문체부의 ‘2016년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한 활동은 쇼핑이 47.0%로 압도적이었다. 2위는 업무수행(9.8%). 3위와 4위를 차지한 식도락 관광(8.9%), 자연경관 감상(7.7%) 등 쇼핑 이외의 관광 비중은 크게 낮았다. 유커조차도 한국의 관광 콘텐츠 부족을 지적할 정도다. 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유커의 한국 관광이 최고조였던 2014년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국가별 관광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16개국 중 1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다시 한국을 찾는 재방문율도 25.7%에 그쳤다. 다른 조사에서도 유커의 한국 관광에 대한 불만사항 중 1위가 ‘관광자원 부족’(41.6%), 2위가 ‘단조로운 일정과 자율성 부족’(22.1%)이었다. ‘한국 관광 인프라가 충분하다’는 평가는 9.4%에 불과했다.
한국 관광의 전반적인 매력도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올해 3월 36개국 전문가를 포함한 2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전통문화자산 및 여행 가치는 조사 대상 80개국 중 각각 44위, 67위에 불과했다.
○ 유커 모객에 연 1조 원 쓰는 한국 면세점의 그늘
쇼핑 관광의 질을 떨어뜨리는 송객 수수료는 계속 오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면세점이 여행사에 지불하는 송객 수수료는 2013년 2967억 원으로, 총 시내면세점 매출 대비 7.3% 수준이었다. 지난해에는 9672억 원으로 전년(5630억 원) 대비 71.8% 늘었다. 이는 시내면세점 매출 대비 10.9%, 단체관광객 매출 대비 20.5%에 이르는 수치. 올해 상반기(1∼6월) 송객 수수료는 5204억 원으로 결국 연간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를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론 쇼핑 상품 기획 주도권을 유커나 중국 여행사가 아닌, 우리(한국 업계)가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정 동국대 법대 교수는 “일본인 관광객이 올 땐 모두 일본 마케팅, 그 다음엔 중국이더니, 이젠 동남아에 기웃거린다”며 “흐름에 좌우되지 말고 면세점이 그 나름의 특징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푸는 등 실효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정민지·강성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