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살짝 스치는 스파이크 공은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힘들다.
안영식 전문기자
사람 눈의 성능은 눈 밝은 동물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 시력검사표의 가장 작은 숫자나 기호를 판별할 수 있는 시력이 2.0인데, 이를 기준으로 타조는 무려 25.0, 매 9.0, 독수리와 갈매기는 5.0이라고 한다. 인간의 시야는 180도에 불과하지만 말은 거의 360도에 가깝다. 말은 목덜미 뒤쪽 5도 정도만 볼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눈이 말처럼 머리의 옆면에 위치했다면 심판 뒤에서 일어나는 반칙도 대부분 적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배드민턴 셔틀콕의 순간 최고 속도는 시속 320km, 테니스 서브는 300km, 배구 서브는 110km에 육박한다. 이렇게 빠른 스매싱과 서브가 라인 바로 옆에 떨어졌을 때 육안으로 정확히 인·아웃을 판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고, 배구와 농구, 야구, 축구 등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특히 테니스에서는 ‘호크 아이’라는 첨단 장비가 오차범위 3mm까지 판독해 내고 있다.
그런데 경기 중 실수는 선수만 하는 게 아니다. 심판도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래저래 사람이 심판을 보는 스포츠 종목에선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의적인 경기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종목마다 비디오 판독 요청 횟수가 제한돼 있다. 그 이후에 발생한 오심은 바로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여전히 ‘오심도 경기의 일부’인 게 현실이다.
국내 프로배구에서 활성화된 비디오 판독은 TV 시청자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하지만 선수와 심판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해당 선수는 시치미 떼고 마치 배우처럼 표정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당당히 손을 들어 자신의 범실을 인정할 선수는 없을 것이다. 모난 돌은 정 맞기 십상이다. 판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주심도 마음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비디오 판독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국내 프로배구에서는 ‘판독 불가’가 종종 나온다. 판독에 ‘호크 아이’가 아닌 TV 중계방송 화면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배치된 TV 카메라 수와 성능의 한계로 사각(死角)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고 미세한 차이를 분간하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있다.
한국프로배구는 국내 프로 종목 중 처음으로, 세계 배구 역사상 최초로 2007년부터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세련되고 공정한 경기 운영에 반드시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처한 여건에서 ‘운영의 묘’를 발휘하면 된다.
주심도 자신에게 부여된 비디오 판독 권한을 적극 활용하자. 비디오 판독을 이용한다고 심판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심, 선심들과의 ‘다수결 판정’으로 선수와 감독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비디오 판독에 길들여진 그들의 눈높이는 이미 눈썹 위에 올라가 있다. 이번 시즌 프로배구는 유난히 많은 접전과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그에 걸맞은 매너와 판정을 기대한다. 찜찜함은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