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펜서 슬레욘 트위터
온라인에서 다른 이들과 게임을 하다보면 종종 ‘정모(게임 사용자들이 인터넷에서 모이거나 현실에서 직접 만나는 것)’를 갖기도 한다. 미국에서 게임으로 친구가 된 20대 청년과 80대 할머니가 나이, 인종, 거리의 벽을 넘어 특별한 ‘정모’를 갖게 된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4일 보도에 따르면 은퇴한 뒤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백인 여성 로잘린 거트맨(81)과 뉴욕에서 래퍼 겸 힙합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흑인 남성 스펜서 슬레욘(22)은 지난해 여름 한 모바일 게임에서 대전 상대로 만났다. 이는 글자를 조합해 단어를 맞추는 퍼즐 게임. 페이스북 계정으로 가입할 수 있고 누구나 본인의 프로필 사진을 공개해 둔다. 덕분에 스펜서는 처음부터 자신이 백인 할머니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 판에서 그의 상대인 로잘린은 신세대가 아니면 알기 힘들 수 있는 신조어까지 답을 척척 맞춰냈다. 내심 놀란 스펜서는 “‘Phat(미국 신조어·기똥찬, 끝내주는)’?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아세요?”라며 로잘린에게 말을 걸었다.
스펜서가 게임을 하지 않게 된 뒤로 두 사람은 소원해졌다. 그러나 그대로 끊기는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인연은 현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우연한 기회였다.
스펜서는 두 달 전부터 친구 한나 버틀러의 집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 한 명도 함께였다. 스펜서는 이 친구에게 게임에서 만난 80대 할머니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이야기를 한나의 어머니이자 한 교회 목사인 에이미가 듣게 됐다.
에이미는 인종과 나이의 벽을 게임으로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를 자신의 교회 설교에 인용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미는 스펜서에게 “아직 로잘린 씨와 연락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스펜서는 오랜만에 게임에 접속했다.
에이미는 스펜서를 통해 로잘린과 대화를 나눴고, “스펜서가 로잘린 씨를 만나러 플로리다까지 가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얼마 뒤, 스펜서는 에이미와 함께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는 약 1850km 거리. 스펜서는 팜 비치에서 로잘린을 만난 뒤 활짝 웃으며 포옹을 나눴다. 스펜서는 이 모습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지난 2일 올라온 이 사진은 24만 여회 공유됐다.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