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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조세회피처 한국’

입력 | 2017-12-07 03:00:00


택스 프리(Tax Free)를 싫어하는 사람은 실적을 올려야 하는 세무서 직원을 빼고는 없다. 세무서 직원조차도 쇼핑객이 되면 택스 프리를 찾는다. 돈은 속성상 돈을 숨길 수 있는 곳이나 세금이 적은 곳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카리브해의 케이맨 제도에는 법인세가 없다. 인구 5만여 명의 이 작은 섬나라는 법인이 실재하는지 서류상의 페이퍼컴퍼니인지는 관심이 없다. 법인 등록세와 매년 등록을 갱신하는 요금만 받고도 잘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의 탐사 저널리스트인 바스티안 오베르마이어는 지난해 어느 날 신원 미상의 인물로부터 10만 건에 달하는 페이퍼컴퍼니 내부 자료를 건네받았다. 이것이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명단이 대량 유출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중에는 한국인 190명도 포함돼 있었다.


▷유럽연합(EU)은 5일 한국을 조세회피처 17개국 중 하나로 지정했다. 한국을 빼고 모두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이거나 자치령인 섬지역이다.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세인트루시아 같은 나라 수준으로 한국이 졸지에 전락한 기분이다. 한국이 포함된 건 외국인투자지역과 경제자유구역 등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의 세금 감면 혜택과 관련해 투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EU는 제재 수위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제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타격을 받았다.

▷2009년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가 본격 거론됐다. 그 리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으나 한국은 없다. 그러나 EU는 더 엄격한 조세회피처의 개념을 갖고 있다. 자유무역지대와 같은 곳도 일종의 조세회피처로 분류한다. 조세회피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투명성이다. 유리지갑 회사원들에게 한국이 조세회피처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복잡한 기업 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 그레이리스트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