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 본보 인터뷰
정세균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예산안 처리와 1년 전 이뤄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 의장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되지만, 민주주의의 역량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정세균 국회의장은 1년 전인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했다. 정 의장은 6일 “박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국가에도 재앙을 불러왔다”면서 “그러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량이 이를 감당할 수준까지 높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의장은 “대통령의 권한은 반드시 분산돼야 한다. 국회가 내년 2월까지 개헌안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대통령에게 개헌안 발의를 먼저 요청하는 것도 불사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탄핵소추안 상정 날짜를 두고 12월 2일, 9일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
“매우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에 각 당 원내대표들과 의논을 거쳐 결정했다. (가결 정족수 확보 외에) 무엇보다 탄핵소추안 처리가 새해 예산안 통과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산안 상정(2일) 이후인 9일로 결정했다.”
―고민이나 고비는 없었나.
“발의부터 상정과 표결까지 무척 신중하게 접근했다. 부결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 아닌가. 부결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221표 정도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234표가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의외로 많은 찬성표가 나온 것이다. 촛불시민의 민주적이고 질서 정연한 노력이 뒷받침됐다고 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혁명이 일어났다.”
“박 전 대통령이 과감한 제안을 했다면 국회가 수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미봉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상황을 호도하려는 인상을 줬기 때문에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탄핵의 원동력은 촛불시위라고 하는데 태극기를 든 시민도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국민은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모든 국민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부정한다든지, 상식과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할 때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없다. 법 체계에 맞지 않는 몰상식까지 존중받기는 어렵다.”
―청와대에 촛불시위 그림이 걸린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국회에 비슷한 그림을 걸자는 요구가 있으면 받아들이겠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이 화두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멀쩡한 것을 뒤집어엎어서 보복을 하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 무리하게 파헤치는 것도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적폐는 청산하는 게 당연하다.”
―미래를 만들어야 할 새 정부가 과거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 있는데….
“공감한다. 그래서 적폐청산을 하더라도 조용하게 했으면 좋겠다. 너무 떠들썩하게 일을 진행하면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조용히 책임을 묻는 것이 좋다. 검찰도 피의 사실을 공표해선 안 된다.”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까지 적폐로 몰거나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공직자는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공직자는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해야 한다. 불법이나 탈법, 도덕적으로 비판받아야 마땅한 지시를 거부할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그 자리를 피해야지 동조해선 안 된다. 이것은 이번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접민주주의 또는 공론화위원회 등이 거론되는 것은 국회가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은 소규모,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하다. 현대사회, 5000만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으로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국회가 정치적인 이해에 매몰되거나 식물국회로 전락해 할 일을 제때 못 할 때 피해는 국민에게 간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의 돌파구 또는 보완 수단으로서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입법부를 대체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 세비를 인상한 것에 비판 여론이 많은데….
“옛날에는 국회 스스로가 세비 인상률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모든 공무원에게 인상률을 자동적으로 적용하도록 돼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경제도 어렵고 하니까 이걸 반납한 것인데, (올해는) 반납을 안 했을 뿐이다. 올해 또 반납하면 차관보다도 (세비가) 적어진다. 그런데도 마치 (국회가) 자발적으로 세비 인상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 가능하다고 보나. ○×로 답한다면….
“51%로 가능하다고 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홍 대표는 지금은 반대하고 있지만 지난 대선 때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했다. 정당은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설득할 것이라 믿는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 역시 이견이 많다.
“더 많은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찬성한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다음으로 미루고 합의에 이른 것만 가지고 개헌을 해야 한다.”
―국회가 개헌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다. 국민의 4분의 3이 개헌을 원하고 있다. 국회가 못 한다면 대통령이라도 해야 한다. 지금이 개헌의 적기다. 이번에 개헌이 꼭 이뤄져야 한다.”
―연말연초 사면이 거론되고 있는데….
“국정 운영에 가장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역대 정권들이 민생 사범들을 사면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과연 온정의 손길이 어디에 필요한가. 그걸 잘 판단해야 한다.”
길진균 leon@donga.com·장관석·최고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