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야마시 도야마자동차강습소에서 노인들이 운전면허 갱신 시험을 치르고 있다. 노인 운전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사고를 줄이는 방법과 함께 첨단 주행안전 장치를 활용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동아일보DB
석동빈 기자
운전대를 돌려서 피했다간 문제의 차가 앞에 있던 세차 직원들을 덮치거나 도로로 튀어나가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아 브레이크를 깊게 밟아 그 차를 막아줬습니다. 다행히 몇 초 뒤 엔진소리가 줄어들었고, 기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따질 요량으로 차에서 내려 검은색 차에 다가갔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70대 후반의 운전자가 손을 벌벌 떨면서 “세차기에서 나오는 순간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잘못 밟았다”며 “판단력이 떨어져 운전대를 놔야 하는데 불편해서 쉽지 않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사고 수습을 하던 주유소 직원은 새로 쌓은 뒤쪽 담을 가리키며 “얼마 전에도 고령 운전자가 주유 후 출발하다 갑자기 돌진해 담을 무너뜨렸다”고 말했습니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이 일으키는 대형 사고는 사회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됐습니다. 3명의 사망자를 낸 11월 2일 경남 창원터널 트럭 화재사고도 고령 운전자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고 트럭 운전사의 나이가 76세였고 최근 2년간 10건의 사고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 비틀거리며 비정상적으로 운전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기 때문입니다.
경찰청과 손해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27% 감소했지만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4.8% 늘었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운전자 교통사고는 최근 5년 동안 69.6%나 증가했고, 70세 이상 운전자의 사고당 치사율(0.32%)과 손해액(188만 원)은 모든 연령층 중 가장 높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13%인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10년 뒤엔 20%대로 높아집니다. 해당 연령 운전면허 소지자도 현재 235만 명에서 50만 명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은 30년 전부터 적성검사 강화와 운전면허 반납운동 등으로 고령 운전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기는 했지만 워낙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 사고는 이제 더 이상 줄지 않는 추세입니다.
1998년부터 65세 이상 운전면허 반납 제도를 시행한 일본은 2015년에만 27만 명의 고령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반납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운전면허 반납제도를 도입했지만 2015년 1433명, 2016년 1942명에 불과합니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늘면서 한국도 일본처럼 적성검사 기간을 65세 이상 운전자는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고, 75세 이상은 내년부터 3년으로 줄입니다. 하지만 64세에 적성 검사를 받으면 기존 10년의 갱신 주기가 적용돼 74세까지 적성검사 없이 운전할 수 있다는 허점도 있어 이런 규제성 대책만으로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 발생을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본은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전면허 졸업식’을 열어 감사장과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배려가 없습니다.
운전면허제도의 변경뿐만 아니라 교통안전시설의 개선과 자동차의 첨단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고령 운전자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페달 오작동을 방지하기 위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가속이 되지 않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시스템(brake override system)’을 비롯해 차선이탈방지장치와 보행자나 다른 차가 앞에 있으면 저절로 정지하는 자동긴급제동장치 등 ‘안전장치 패키지’의 보급이 확대되도록 세금 감면이나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또 이런 안전장치가 적용된 자동차만 운전이 가능한 고령 운전자 면허제도의 운영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선진국의 선례를 따라만 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시도하면 새로운 실버산업의 기회가 포착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