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그로부터 3주 뒤인 지난주 교육부는 내년부터 전국 초등학교의 방과 후 수업에서 1, 2학년 대상의 영어수업을 금지하기로 확정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보도하면서 문득 트럼프의 손녀가 떠올랐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도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갖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는데 우리나라는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라는 곳이 법으로 영어조차 못 배우게 막다니.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만 배울 수 있고 그 전에 학교에서 가르치면 법 위반이다. 교육부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시기를 초3부터로 규정한 것은 그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모국어와 혼동할 수 있고 학습 효율이 높지 않으며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국어 교육의 적기를 놓고 학자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어쨌든 교육부 의견은 이렇다. 시험이나 진도 압박 없이, 대부분 놀이식으로 진행됐던 초 1, 2 방과 후 영어조차 강제 금지된 이유다.
교육부는 ‘역량 중심 교육’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외국어를 학습의 관점에서 보고 정책의 최종 목표를 사교육 잡기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초 1, 2는 영어를 배우면 안 된다’는 교육독재 같은 발상이 나오지 않았겠나. 더 우스운 건 현재 유치원 및 어린이집 대부분에서는 매주 한두 시간씩 초등학교의 방과 후 수업과 유사한 영어 특별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5∼7세에는 됐던 게 8, 9세에는 갑자기 ‘위법’이라니 교육 앞에 늘 백년지대계를 말하는 나라에서 생긴 일인지 의문이다.
정책 결정 전 교육부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70% 이상의 학부모는 영어 방과 후 수업이 계속되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의견은 완전히 무시됐다. 이젠 매달 수십만 원의 학원비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집 아이들만 영어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됐다. 학부모들은 ‘학원에 안 보내도 되게 제발 학교에서 역량을 키워 달라’고 호소하며 청와대 청원을 시작했다. 6일 현재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 지속을 요구하는 글은 청원 목록 가운데 20번째로 많은 1만5632명의 청원을 받았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