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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탐방/가천대]“인공지능 기술 활용은 기본… 가슴 따뜻한 의사 양성이 목표”

입력 | 2017-12-07 03:00:00

가천대 이길여 총장




5일 경기 성남시 가천대 가천관에서 이길여 총장이 소프트웨어 교육의 중요성과 가슴 따뜻한 의료인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남=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가천의과학대와 경원대가 통합해 ‘가천대’가 출범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올해 수시모집에선 2700명 모집에 5만4169명이 지원해 지원자 수 전국 5위를 기록했다. 수도권 중심이었던 신입생 분포는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눈에 띄는 이 같은 성장에 어떤 비결이 있는지 5일 경기 성남시 가천대 가천관에서 이길여 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총장은 가천대의 핵심 성장 비결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꼽았다. 2015학년도에는 수능 만점자가 가천대 의과대에 입학하기도 했다.

―가천대 의대의 성장 비결은 무엇인가.

“다른 의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생 의대인 가천대는 창의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승부를 걸었다. 특히 통합임상실습 교육과정은 가천의대의 독특한 실습과정이다. 다양한 과가 협력해 환자의 증상을 살펴본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게 된다. 통합임상실습의 내실화를 위해 내년부터는 ‘장기추적통합임상실습(LIC)’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LIC는 미국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 해외 유명 의과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환자의 병원 방문부터 입원, 퇴원 후까지 환자의 진료 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추적하면서 체계적으로 환자를 관리하고 질병도 관리할 수 있다.”

―가천대 의대만의 또 다른 차별점은 뭔가.

“인공지능(AI) 의사 ‘왓슨’을 꼽고 싶다. 왓슨은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의학계의 인공지능이다. 왓슨은 수십만 명의 환자 정보와 1500만 쪽에 달하는 의학 자료를 습득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지금도 계속 최신 의학정보를 공부하고 있다.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다. 의료용 인공지능은 인간의 실수와 오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레지던트 때가 돼서야 현장에서 배우려 하면 이미 늦는다. 그래서 우리 대학은 인공지능 관련 교과를 학부 실습 과정에 도입했다. 학부 시절부터 인공지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법을 익혀 의대를 졸업한 뒤 실제 의사가 되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내고 처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 총장에 따르면 가천대 의대생들은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통계학 및 프로그래밍, 컴퓨터공학 등을 배운다. 디지털 활용에 능숙한 의사를 길러낸다는 의미다. 이 총장은 왓슨뿐 아니라 이전부터 소프트웨어 및 기술 발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왔다. 이를 어떻게 의술에 활용할지 고민하곤 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닥터 오더링 시스템’을 개발해 가천대 길병원에 도입했던 것은 그의 고민과 관심 때문이었다. 닥터 오더링 시스템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이 과거엔 어떤 병을 앓았는지 파악하고 치료받을 때 필요한 처치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말한다. 가천대 길병원에서 해당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국내 다른 대형병원들이 순차적으로 이를 도입했다.

―가천대 내 다른 과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나.

“가천대는 2002년 국내 대학 최초로 소프트웨어 단과대학을 만들었다. 현재는 IT(정보기술)대학으로 발전시켰다. 가천대는 2015년 전국 8대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으로 선정됐다. 지난해부터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소프트웨어와 관련해서 8개 과목, 80개 강좌를 만들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인재를 배출할지가 내 주된 관심사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다고 현장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있나.

“최신 산업체 수요 기술을 커리큘럼에 반영하고 있다. 로봇공학, 모바일 프로그래밍 등 교과목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체와 공동으로 교육 내용을 개발하고 산업체 참여 교과를 신설해 현장성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미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 영어권 대학의 저명한 교수의 연구실과 미국 스타트업 기업들에 학생들을 파견해 소프트웨어 연구 과정에 동참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천대는 가천미래가상현실체험센터를 열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 갖춰진 최신 기기를 활용해 수업시간에 가상현실 콘텐츠를 직접 디자인하고 시연해 볼 수 있다. 또 가천대에서 설립한 ‘인공지능 기술원’에서는 국내외 연구소와 기업의 인공지능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두고 의과대, 컴퓨터공학과, 소프트웨어학과, 에너지IT학과 등 교수진을 연구에 참여시키고 있다. 교수들은 인공지능의 원천기술을 연구할 뿐 아니라 대학과 대학원 학생들을 인공지능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 있다.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도 마련하고 있는지….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 2012년 하와이에 기숙형 어학센터인 ‘하와이가천글로벌센터’를 열었다. 학생들은 최대 15주 동안 머물면서 영어를 공부하고 현지 문화를 체험한다. 학비와 기숙사비, 왕복항공료 등은 대학에서 지원한다. 그동안 이곳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1200명가량 된다.”

어학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도 가천대의 큰 장점이다. 이 총장에 따르면 가천대는 학생들에게 창업아이템 사업화, 대학생 창업교육, 창업동아리 등을 지원하고 원스톱 창업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창업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2014년 창업휴학 제도를 도입해 학생창업자는 최대 2년 동안 창업을 이유로 휴학을 할 수 있다.

가천대 의과대 학생들은 1998년부터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 등 총 6년 동안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무료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의대 장학금 수혜율이 전국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싸다고 소문난 의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할 뿐만 아니라 기숙사비도 부과하지 않는 건 대학으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총장에게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우수한 인재가 등록금 걱정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우리 후배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공부를 못하게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총장 자신도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시절 등록금 지불과 하숙비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장학금은 현재 학교 재단에서 제공하고 있다.

―보통 의대생들은 교환학생이나 방문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는 사례가 적다. 가천대에는 의대생을 위한 글로벌 프로그램이 있나.

“우리 대학의 건학 이념인 ‘박애 봉사 애국’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화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임상실습 경험을 다양화하고 국제화하기 위해 매년 3학년 재학생 50% 이상을 미국 토머스 제퍼슨 의대, 독일 아헨 의대, 샤리테 의대, 하이델베르크 의대, 일본 니혼 의대, 후지타 의대, 중국 베이징 의대, 쉬저우(徐州) 의대 등 해외 유수 의과대학으로 파견하고 있다. 해외 유수 의과대에서 가천대 의과대로 파견 온 학생도 지금까지 500여 명으로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어떤 의사로 키우고 싶은 건가.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건 기본이다. 앞서 말했듯 LIC와 인공지능 도입, 장학금과 기숙사비 지원 등은 학생들이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기본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한다는 전망도 많다. 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은 진단과 처방, 나아가 수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와 공감하고 환자를 보듬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이 환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얼마나 어떤 식으로 아픈지 상세하게 물어보고 그 아픔이 의사 본인에게도 느껴져야 한다. 정형외과 수술은 정말 아프다. 진짜로 ‘뼈를 깎는’ 고통이다.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의사라면 ‘수술한 환자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아파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하기보다, ‘환자가 회복 과정에서 왜 아파야 하는가,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총장이 개원의 시절 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때 차가운 청진기에 놀라지 않도록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했다는 일화는 그가 추구하는 의사 상을 잘 보여준다. 가천대 의과대 학생들은 ‘가슴 따뜻한 의료인 양성’이란 목표 아래서 의료기술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캄보디아 몽골 등의 나라들로 의료봉사를 간다. 국내 요양병원 등에서도 의료봉사를 한다. 이 총장은 의사의 공감 능력이 의술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제약회사보다 앞서 가천대 길병원에서 통증완화제를 개발해냈던 것이 한 예다.

성남=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