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이길여 총장
5일 경기 성남시 가천대 가천관에서 이길여 총장이 소프트웨어 교육의 중요성과 가슴 따뜻한 의료인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남=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가천대 의대의 성장 비결은 무엇인가.
“다른 의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생 의대인 가천대는 창의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승부를 걸었다. 특히 통합임상실습 교육과정은 가천의대의 독특한 실습과정이다. 다양한 과가 협력해 환자의 증상을 살펴본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게 된다. 통합임상실습의 내실화를 위해 내년부터는 ‘장기추적통합임상실습(LIC)’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LIC는 미국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 해외 유명 의과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환자의 병원 방문부터 입원, 퇴원 후까지 환자의 진료 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추적하면서 체계적으로 환자를 관리하고 질병도 관리할 수 있다.”
이 총장에 따르면 가천대 의대생들은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통계학 및 프로그래밍, 컴퓨터공학 등을 배운다. 디지털 활용에 능숙한 의사를 길러낸다는 의미다. 이 총장은 왓슨뿐 아니라 이전부터 소프트웨어 및 기술 발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왔다. 이를 어떻게 의술에 활용할지 고민하곤 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닥터 오더링 시스템’을 개발해 가천대 길병원에 도입했던 것은 그의 고민과 관심 때문이었다. 닥터 오더링 시스템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이 과거엔 어떤 병을 앓았는지 파악하고 치료받을 때 필요한 처치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말한다. 가천대 길병원에서 해당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국내 다른 대형병원들이 순차적으로 이를 도입했다.
―가천대 내 다른 과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나.
“가천대는 2002년 국내 대학 최초로 소프트웨어 단과대학을 만들었다. 현재는 IT(정보기술)대학으로 발전시켰다. 가천대는 2015년 전국 8대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으로 선정됐다. 지난해부터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소프트웨어와 관련해서 8개 과목, 80개 강좌를 만들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인재를 배출할지가 내 주된 관심사다.”
“최신 산업체 수요 기술을 커리큘럼에 반영하고 있다. 로봇공학, 모바일 프로그래밍 등 교과목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체와 공동으로 교육 내용을 개발하고 산업체 참여 교과를 신설해 현장성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미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 영어권 대학의 저명한 교수의 연구실과 미국 스타트업 기업들에 학생들을 파견해 소프트웨어 연구 과정에 동참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천대는 가천미래가상현실체험센터를 열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 갖춰진 최신 기기를 활용해 수업시간에 가상현실 콘텐츠를 직접 디자인하고 시연해 볼 수 있다. 또 가천대에서 설립한 ‘인공지능 기술원’에서는 국내외 연구소와 기업의 인공지능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두고 의과대, 컴퓨터공학과, 소프트웨어학과, 에너지IT학과 등 교수진을 연구에 참여시키고 있다. 교수들은 인공지능의 원천기술을 연구할 뿐 아니라 대학과 대학원 학생들을 인공지능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 있다.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도 마련하고 있는지….
가천대 의과대 학생들은 1998년부터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 등 총 6년 동안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무료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의대 장학금 수혜율이 전국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싸다고 소문난 의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할 뿐만 아니라 기숙사비도 부과하지 않는 건 대학으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총장에게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우수한 인재가 등록금 걱정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우리 후배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공부를 못하게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총장 자신도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시절 등록금 지불과 하숙비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장학금은 현재 학교 재단에서 제공하고 있다.
―보통 의대생들은 교환학생이나 방문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는 사례가 적다. 가천대에는 의대생을 위한 글로벌 프로그램이 있나.
“우리 대학의 건학 이념인 ‘박애 봉사 애국’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화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임상실습 경험을 다양화하고 국제화하기 위해 매년 3학년 재학생 50% 이상을 미국 토머스 제퍼슨 의대, 독일 아헨 의대, 샤리테 의대, 하이델베르크 의대, 일본 니혼 의대, 후지타 의대, 중국 베이징 의대, 쉬저우(徐州) 의대 등 해외 유수 의과대학으로 파견하고 있다. 해외 유수 의과대에서 가천대 의과대로 파견 온 학생도 지금까지 500여 명으로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어떤 의사로 키우고 싶은 건가.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건 기본이다. 앞서 말했듯 LIC와 인공지능 도입, 장학금과 기숙사비 지원 등은 학생들이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기본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한다는 전망도 많다. 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은 진단과 처방, 나아가 수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와 공감하고 환자를 보듬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이 환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얼마나 어떤 식으로 아픈지 상세하게 물어보고 그 아픔이 의사 본인에게도 느껴져야 한다. 정형외과 수술은 정말 아프다. 진짜로 ‘뼈를 깎는’ 고통이다.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의사라면 ‘수술한 환자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아파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하기보다, ‘환자가 회복 과정에서 왜 아파야 하는가,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총장이 개원의 시절 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때 차가운 청진기에 놀라지 않도록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했다는 일화는 그가 추구하는 의사 상을 잘 보여준다. 가천대 의과대 학생들은 ‘가슴 따뜻한 의료인 양성’이란 목표 아래서 의료기술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캄보디아 몽골 등의 나라들로 의료봉사를 간다. 국내 요양병원 등에서도 의료봉사를 한다. 이 총장은 의사의 공감 능력이 의술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제약회사보다 앞서 가천대 길병원에서 통증완화제를 개발해냈던 것이 한 예다.
성남=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