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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중동의 뇌관 건드리다

입력 | 2017-12-07 03:00:00

美대사관 이전 채비… 아랍권 발칵
사우디 등 親美국가들도 반대… 중동서 中-러시아-이란 영향력 커질듯
트럼프 ‘美패권 약화’ 자충수 가능성
美대사관 이전 현실화 3, 4년 걸려… 사우디-이란 실제개입 어려울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인정하고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동 국가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관리는 5일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6일 오후 1시 백악관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준비작업을 국무부에 지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예산을 확보해 대사관 터를 구하고 건물 설계와 보안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텔아비브 대사관에 약 1000명이 근무해 실제 이전까지는 3, 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예루살렘은 현재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1947년 유엔은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에 대해 ‘특별한 국제체제’라는 독특한 지위를 부여했다. 실제 국방부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주요 입법·사법·행정 기관은 예루살렘에 있다. 하지만 텔아비브가 수도로 알려진 것은 국제사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헤게모니 경쟁 △이란 핵 합의를 둘러싼 갈등 △예멘 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중동 정세를 더욱 흔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러시아, 이란같이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놓고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국가에 유리한 판을 깔아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중 독재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며 안보 측면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슬람교 시아파 맹주 이란도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초승달 동맹’(시아파 인구가 다수인 나라)을 거의 완성했다. 중국도 시리아를 중심으로 전후 복구 사업에 적극 나서며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 터키, 이집트 같은 친미 성향의 중동 국가들도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으로 결국 미국의 입지만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은 “중동지역의 안정과 안보에 위험한 영향을 주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재개하는 데도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5일 “예루살렘은 무슬림에게 꼭 지켜야 하는 레드라인이며 (트럼프가 선언할 경우) 이스라엘과 단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이 향후 미국의 대(對)중동 외교에 대한 불신을 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미국이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편임을 보여주는 조치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극우파보다 더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은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를 비롯해 정통 유대교인들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 많다는 점도 향후 ‘트럼프표 중동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지역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이 개입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자신의 권력 기반 다지기에 ‘올인’하며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태다. 이란은 핵 합의를 두고 이미 미국과 갈등 중이라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게 부담스럽다. 결국 두 나라 모두 강경한 성명 발표 같은 ‘레토릭(말) 대응’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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