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인·경제부
그러나 유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한국 관광 현장을 취재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만의 특색 없이 중국색으로 물들어가는 거리, 품질은 고려하지 않은 조악한 여행 상품들, 쇼핑 말고는 즐길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관광지. 한국 관광 생태계의 이 같은 황폐화를 모두 유커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실제로 기자가 만난 관광 업계 종사자 중에선 “한국 관광은 (유커가 아닌) 우리가 망쳤다”고 고백하는 경우도 많았다.
격식 있는 고급음식점에 가면 식사 예절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혹시 나 때문에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식당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며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진다. 동시에 ‘내가 품격을 지키면 그에 걸맞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도 생긴다. 한국 관광 시장이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면 과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아무데서나 큰 소리를 내는 관광객들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먼저 우리의 콘텐츠를 아끼지 않으니 관광객들 또한 한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 아닐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때문에 올해 1∼9월 한국이 입은 손실만 약 7조5000억 원 규모다. 많은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다시 찾아올 귀한 손님’으로 보지 않고, ‘뜨내기 쇼핑객’ 정도로 봤던 우리의 잘못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온 측면이 적지 않다.
관광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들 한다. 물밀듯 들어오는 유커의 지갑만 쳐다보는 한탕주의식 관광 산업이 고착되면서 우린 ‘귀한 손님 맞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지도 모른다. 한국에 호감을 갖고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해 준 많은 고마운 외국인들이 실망감만 안고 돌아간다면, 그건 유커가 아니라 주인인 우리의 책임이다. ‘유커가 돌아온다’고 들뜨기 전에 한국 관광이 ‘자성(自省)의 거울’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손가인·경제부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