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유전자 이용 연구결과 잇따라
올해 발표 30주년을 맞은 ‘아프리카 기원론’은 인류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고 본다. 리베카 캔 하와이대 의대 교수(당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원)팀이 1987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이 시초로, 캔 교수는 현생인류 147명으로부터 모계로만 유전되는 핵 바깥의 DNA(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 해독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는 인류학계에 큰 충격을 줬고, 후속 연구와 함께 지구 곳곳에 인류가 퍼진 경로를 세밀하게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에 따르면 인류는 약 6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주를 시작했으며 가장 먼 지역에 해당하는 동아시아와 호주 대륙에는 4만∼4만5000년 전에 도착했다.
옛 기후를 연구하는 고기후학자들도 배 교수의 의견을 뒷받침하고 있다. 기후 모델링 기법으로 인류의 이주를 복원하는 연구로 작년 9월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악셀 티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유전학자들은 6만∼7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의 이주가 시작됐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그 이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났다가 나중에) 아프리카로 되돌아간 인구를 고려하지 않아 오해를 한 것”이라며 “12만 년 전에 이주가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전학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작년 10월 네이처에 실린 게놈 해독 연구에서 미국 연구팀은 현생인류가 약 12만 년 전 이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2015년에는 학술지 ‘진화인류학’에 실린 논문 역시 인류의 확산을 연구한 기존 논문의 데이터를 재해석해, 현생인류가 서남아시아로 진출한 시기가 12만 년 전이라고 결론 내렸다. 여기에 올해 6월 말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에서 발견된 31만 년 전 화석이 현생인류의 화석으로 새롭게 밝혀지면서 인류의 탄생 연대 자체도 10만 년 앞당겨졌다.
물론 아직 반론은 있다. 고기후 전문가인 피터 드 메노컬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12만∼7만 년 전에 인류가 아프리카 밖 아라비아반도까지 나간 것까지는 맞지만 더 이상 유라시아로 진출하지 못했다”며 “인류가 유라시아로 처음 떠난 것은 6만 년 전이 맞다”고 주장했다. 드 메노컬 교수는 “덥고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가 2만 년 주기로 반복되던 이 지역(아프리카대륙과 아라비아반도)은 7만∼6만 년 전 사이에 급격히 춥고 건조해졌다”며 “생존을 위한 이주가 이때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새 증거들을 종합하면 인류는 6만 년 전 이전에 소규모 인원이 여러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 아시아의 해안가와 북부 내륙으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6만 년 전 이후 다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 이전의 흔적을 덮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