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일 산업부 기자
푸드테크(Food Tech) 스타트업 이그니스(Egnis)도 최근 몇 달 동안 속병을 앓았다. 이그니스는 밥 한 끼 챙겨 먹기 어려운 직장인들이 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시는 밥’ 랩노쉬를 개발해 성장세를 보여 온 곳이다. 그런데 올해 8월, 회사에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제품명이 바뀐 건가” “맛이 달라졌다” “가격이 내려간 이유가 무엇인가” 등이다.
제품 용기부터 포장 디자인, 색상까지 랩노쉬와 비슷한 한 기업 제품이 유명 대형마트에서 판매된다는 사실을 안 순간 이그니스 창업 멤버들이 느꼈을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형 미래식량’을 만들어보겠다며 2014년부터 제품 개발에 쏟은 3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그니스 박찬호 대표는 “법률 지식이 전혀 없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인 특허청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특허청은 앞으로 전담 인력도 충원하고, 신고센터도 직접 운영해 어려움에 빠진 벤처·스타트업을 구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스타트업 표절 논란은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사진보정 애플리케이션(앱) 싸이메라 중 일부 기능이 스타트업 오디너리팩토리와 비슷하다는 시비에 휘말려 해당 기능 서비스를 종료했다. 네이버도 지난해 일부 번역 서비스가 스타트업 플리토 서비스와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베끼고 모방하는 사례는 이 외에도 수두룩하다.
아무리 특허청 등 정부기관이 규제 방안을 마련해도 일일이 무 자르듯 ‘베꼈다’ ‘아니다’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이나 협회조차 신생 기업과 유사한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 등 음식배달 앱이 인기를 끌자 한국배달음식협회가 “우린 수수료가 없다”며 출시한 ‘디톡’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황당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중소기업청까지 나서 “우리가 홍보를 돕겠다”고 했다. 디톡이 지금 나온다면 특허청이라도 잘잘못을 판단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규제보다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스타트업의 서비스 아이디어나 제품을 가볍게 보지 않고, 그 가치와 철학을 인정해주는 문화 말이다. 표절 위협을 해결한 이그니스는 새 출발을 위한 제품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이그니스의 난관 극복기가 한국 창업문화에도 긍정적인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