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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신세계… 임금 안깎고 1월부터 주 35시간 근무

입력 | 2017-12-09 03:00:00

대기업 최초 법정시간서 5시간 단축




이마트 서울 본사의 김모 과장은 맞벌이다. 최근 두 아이를 늦은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맡겨둬야만 했다. ‘아이 돌봄이’ 아주머니가 이틀간 휴가를 가서였다. 오후 6시 칼퇴근을 하고 부리나케 어린이집으로 달려갔지만 7시가 훌쩍 넘었다. 김 과장은 “맞벌이 가정 대부분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앞으로 이런 고민을 한층 덜게 됐다.

신세계그룹은 내년 1월부터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5시간 단축한다고 8일 밝혔다. 근무시간은 줄지만 임금 삭감은 없다. 유럽 등 선진국에선 단축근무를 시행하는 사례가 많지만 국내 대기업 중 ‘주 35시간제’ 도입은 신세계가 처음이다.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 모든 계열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신세계는 팀이나 직무에 따라서는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 ‘9 to 5’(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를 적용받지만 일부는 ‘8 to 4’나 ‘10 to 6’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직원들로서는 근무여건이 좋아진 것이지만 회사로서는 근무시간 단축은 큰 모험에 가깝다. 신세계도 지난 2년간 연구해 최종안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우선 전국 이마트 145곳 중 밤 12시까지 영업해 온 69곳은 내년부터 폐점 시간을 오후 11시로 1시간 앞당긴다. 오후 11시∼밤 12시 매출액은 하루 매출액의 2∼3% 정도에 불과해 내린 결단이다. 백화점의 경우 전체가 오전 9시 반∼오후 8시(평일 기준) 근무하던 체제에서 오전 9시 반∼오후 5시 반, 낮 12시∼오후 8시 등 2개 조로 나뉘게 된다. 이마트처럼 폐점 시간을 당기면 근무시간도 이에 맞춰 조정할 예정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매장 운영 시간을 줄이면 매출이 줄어들지만 임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가는 만큼 업무 효율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주 35시간 근무제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행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려는 정부 방안에 대해서도 많은 기업이 우려를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파격 실험’이 가능하지만 제조업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신세계는 실제 주 40시간 근무제 운영 시 특근 사용자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최근에야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여도 문제가 없는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중소·중견기업들에도 먼 나라 얘기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근로자의 근무환경 개선은 긍정적이지만 대기업 근로시간 단축이 협력업체의 근로 부담 증가로 이어질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2일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이슈가 맞물린 상황이다. 당장 중소기업은 생산량과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위 교수는 “한편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한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에 일상적인 노동 강도 차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