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D-60 日 나고야서 열린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참가자들에게 직접 들어 본 심경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스포츠 선수라면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세계 정상을 꿈꾸는 러시아 15세 소녀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6일부터 9일(공식 연습 포함)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여자 싱글 우승을 차지한 알리나 자기토바. 세계 최고 선수들이 출전하는 이 대회에 여자 세계 1위인 러시아의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8)가 부상으로 불참했지만 러시아는 혜성같이 나타난 자기토바의 우승으로 피겨 강국임을 다시 입증했다. 올 시즌 시니어 무대에 처음 나선 자기토바는 시상식에서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자 힘차게 국가를 따라 불렀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러시아에 있는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오자 황급히 끊은 뒤 “할머니와 부모님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하는 등 소녀다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금지시킨 것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IOC의 러시아 출전 금지는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자기토바는 평창 올림픽 출전 의지만은 분명하게 밝혔다.
“우리는 인질이 된 기분이었다. 조국의 올림픽 참가 여부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길한 결과를 오랫동안 예상해 왔기에 정작 현실이 됐을 때는 놀라움도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피겨 페어 유럽 챔피언이자 세계 2위인 블라디미르 모로조프(25)가 입을 연 것은 7일이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인 자격 출전 선수들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로조프는 “우리는 올림픽에 출전할 것이다. 올림픽은 선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다”라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로조프의 페어 파트너인 예브게니야 타라소바(23)도 “러시아 국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사람들은 우리가 러시아를 위해 연기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전통적 피겨 강국이다. 옛 소련 시절을 포함해 올림픽 피겨에서만 50개의 메달(총 메달 수 1위)을 획득했다. 한 러시아 언론 기자는 “푸틴 대통령이 개인 자격의 참가를 막지 않겠다고 했으니 대부분의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흔들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였던 모로조프-타라소바 조는 5위에 그쳤다. 이번 대회를 3위로 마친 남자 싱글의 미하일 콜랴다(22·세계 4위)는 큰 마음고생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러시아어로 “(IOC가) 러시아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은 올바른 결정이다. 러시아가 없는 올림픽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일본인 통역사가 잘못 전달한 탓에 일부 일본 언론은 “러시아의 행동을 생각하면 출전 금지는 당연한 조치다. 나는 결정을 따를 것이며 러시아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8일 대회 조직위는 황급히 수정을 요청했다.
어수선한 상황이 지나가면서 러시아 선수들은 점차 올림픽 출전 의지를 다져 갔다. 표도르 클리모프(27)와 짝을 이뤄 출전한 러시아 피겨 페어의 크세니야 스톨보바(25)는 “우리는 위대한 모국을 수호한다는 생각으로 올림픽을 준비할 것이다. 국기를 못 쓴다고 해도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고 말했다.
나고야=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