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해제된 美정부 문건서 확인… 1994년 북핵 위기때 전쟁 계획 한미 전력으로 北에 승리 판단… 크루즈미사일로 핵시설 공격 검토
1994년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전쟁을 계획했지만 인명 피해를 우려해 선제공격을 하지 않은 사실이 기밀 해제된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미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가안보문서보관소(National Security Archive)가 8일(현지 시간)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당시 미 국방부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3개월간 주한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 명이 숨지거나 다칠 것으로 예상해 대북 공격 계획을 접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대북특사를 지낸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은 1998년 1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이 전쟁 계획을 세웠었고, 크루즈 미사일로 북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군과 미군의 전력을 합치면 북한과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전쟁의 부정적인 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청와대에서 받은 대화록을 바탕으로 미 국무부에 보고한 문건에 담긴 내용들이다. 페리 전 장관이 최근 한 세미나에서 “북한과의 전면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며 1, 2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규모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스위크도 2006년 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 명을 포함해 궁극적으로 100만 명 이상이 숨지고 미군의 전쟁비용이 6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제네바 합의가 북한 강경파의 득세로 파기되지 않을까 염려한 대목도 확인됐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1998년 4월 국무부 보고에 따르면 미국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방미를 두 달 앞두고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토머스 피커링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북한이 우리가 약속을 저버릴 것이라고 느끼면 그들도 우리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명분을 찾을 것”이라며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것이란 신호가 보이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