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동북아균형자론에 美中 황당 힘없는 균형외교, 위험한 줄타기… 동맹 美에 대한 일종의 배신 중국에 혈맹인 北은 안보관계, 南은 이익 따라 좌우되는 관계 우리만 美中 사이 배회하다간 미국도 중국도 모두 잃을 것
박제균 논설실장
미국에서는 대선 때부터 ‘반미면 어때?’라고 했던 노 대통령이 중국 쪽으로 경사(傾斜)되는 신호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당시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주미 한국대사를 찾아가 “동맹을 바꾸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라.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쏘아붙였다.
비단 노 전 대통령뿐이 아니다. 임기 초 한국 대통령들은 천하를 거머쥔 듯한 승리감에 들떠 불안정한 동북아의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노태우의 ‘동북아평화협의회의’, 김영삼의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박근혜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모두 그런 착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특히 임기 초부터 친중(親中) 노선을 드러냈던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섰다. 이는 미국이 결정적으로 한일 양국 가운데 일본과 밀착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적의 동맹국이란 사실이다. 1961년 체결돼 아직도 유효한 북중 동맹조약(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중국은 한반도 전쟁 재발 시 파병을 포함한 군사원조를 해야 한다. 이른바 ‘자동개입 조항’이다. 유사시 중국이 적국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로 본다. 북한의 생존이 전적으로 중국의 안보와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6·25전쟁에도 참전한 것이다. 중국에 한국은 이익관계이고, 북한은 안보관계다. 이익관계는 때에 따라 버릴 수 있어도 안보관계는 그럴 수 없다. 2000년 중국의 마늘분쟁 보복과 최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이런 한중관계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외교에서 균형자 역할은 무엇보다 군사적 균형을 강제할 수 있는 강대국의 몫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외교를 펼쳤던 영국이 그랬다. 그런 의지와 능력도 없는 나라가 하려 한다면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다. 줄타기는 자칫 추락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균형 외교를 하려면 동맹 관계가 없어야 한다. 당시 영국이 그랬듯이. 동맹을 맺고도 균형 외교를 추구하는 것은 동맹 상대방에 대한 배신 행위다.
동맹은 중립적일 수 없다. 일각에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되, 외교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처럼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외교와 안보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세 가지다. ①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든지 ②동맹을 파기하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든지 ③한미동맹 대신 한중동맹을 맺는 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갈 길은 자명해진다. ①이 아니라 ②, ③을 선택한다면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얻는 것보다 미국으로부터 잃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 이견을 달 전문가는 거의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